"노벨문학상 받기보다는 뉴욕서 베스트셀러 내고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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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홀가분한 기분"이라고 했다. 기자와 만나기 이틀 전 그동안 밀린 원고를 모두 다 써내며 오랜만에 탈고의 짜릿함을 맛보았단다. 지난 5년간 작품 활동이 부진했음을 스스로 안다.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작품 쓰는 일에만 전념했다. 미국 체류 9개월간 200자 원고지 1700장 분량을 썼다고 한다. 한창 소설을 쏟아내던 80년대의 한 해치(2000장)에 육박하는 분량이다.

집에서 가까운 UC 버클리대 인근이 그의 주 활동 무대다.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거나 UC 버클리대 한국학연구소를 찾는 것으로 일상의 답답함을 달래곤 한다. 그는 연구소의 방문학자 (visiting scholar)다.

그가 창작에 전념하겠다며 훌쩍 서울을 떠난 것은 지난해 12월 26일. 아내의 자수전시회 관계로 올해 3월 잠깐 귀국했을 뿐이다.

◆ 연말 귀국 유동적=계획대로라면 그는 올 연말 서울로 돌아와야 한다. 그런데 1년 체류라는 당초 일정은 현재 유동적이다. 미국 생활에 익숙해졌고, 내친 김에 공부 좀 더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평균 연령만 살아도 앞으로 20년은 더 남았는데 좀 더 새로운 것을 수혈받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유혹 때문에 망설이고 있어요. 하버드대 쪽으로 거처를 옮겨 1~2년 더 체류하며 요즘 인기가 있다는 주자학도 공부해 보고 싶고, 아니면 미국 작가 한두 명의 작품을 집중 통독해 보고도 싶고…."

공부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할 일이 많은 게 걱정거리다. 경기도 이천의 '부악문원'을 제자 두 명에게 마냥 맡겨놓을 수 없어 고민이다. 연내 귀국하게 되면 남은 기간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의 집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 거리에 있는 그 유명한 요세미티 국립공원도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골프도 치지 않는다.

그는 국내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성공한 작가다. 해볼 만한 시도는 대부분 해봤을 성싶은데도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다. 80년대 한반도의 운명과 얽히고 설킨 세계사를 소설 형식에 담아 제대로 정리해 보는 작업이다.

◆ "80년대 세계사 소설로 정리"="80년대에 벌어진 소련 등 동구권의 쇠퇴는 동로마 제국이나 사라센 제국의 멸망에 비견될 정도로 몇 세기에 한 번 있을 만한 중요한 사건입니다. 첨예하게 부딪친 두 개의 제국 사이에 끼인 한반도의 운명을 소재로 한 대하소설 '변경'(전 12권)의 연장선에 놓인 작품이 될 겁니다."

그의 미국 체류를 놓고 '노벨상 로비를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그는 허탈해 했다. "터무니없는 오해"라고 손을 내저으며 그는 "노벨상 3개 받기보다 뉴욕에서 베스트셀러 한 번 내보고 싶은 것이 내 소망"이라고 밝혔다. 국내 작가 중 가장 많은 해외 번역 작품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문학의 세계화는 가장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다. 그는 "내가 선호하는 세계화는 품질 좋은 문학 작품을 제대로 세계시장에 내놓고 경쟁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민음사에서 펴내는 계간지 '세계의 문학'에 올 봄 호부터 싣고 있는 장편소설 '호모 엑세쿠탄스'가 최근작이다. 올 겨울 호로 연재가 끝난다. '호모 엑세쿠탄스'란 '처형자로서의 인간'이란 뜻이라고 했다. '처형자로서의 인간'이 무슨 뜻이냐고 재차 묻자 이렇게 답했다.

"초월적 존재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말합니다. 초월적 존재라 하면 흔히 신을 가리키는데, 선신(하느님)과 악마 두 가지가 있어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악마뿐 아니라 선신까지도 배척한다는 속성이 있으므로 그려보고 싶었어요. 예수의 처형이 대표적이죠. 조로아스터.부처 등도 마찬가지죠. 선신은 언뜻 인간의 존경을 받는 것 같지만 실은 시대와 잘 지낸 경우가 없어요. 인간은 기회만 있으면 선신을 처형합니다."

버클리(미국)=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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