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의 골프이야기] "내가 박 대통령 설득해 현대차 허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우중 전경련 회장(왼쪽 둘째)과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에서 첫째), 정몽구 현대 회장(맨 오른쪽). /td>


이코노미스트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 경제 근대화를 이끌었던 주역인 JP는 대기업 창업주들을 지금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평가하는 사람은 앞서 골프에 얽힌 인연을 언급한 바 있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다. 대우그룹을 창업했다가 그룹이 침몰하는 불운을 겪은 김우중 전 회장, LG그룹의 구자경 명예회장, 대한항공의 고 조중훈 회장 등도 훌륭한 기업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 서울 중구 남산에 있는 힐튼호텔에서 기자와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JP는 이 호텔 소유주였던 김 전 회장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그의 추락을 몹시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1960년대에 생산했던 제품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와요. 비누를 만들어 파는데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탈모비누야. 그 비누를 사용한 군인들 머리카락이 빠져 야단났었지. 칫솔로 이를 닦으면 입 속에 빠져나온 솔들이 가득했어요. 뚜껑을 비틀면 구멍으로 빠져나와야 할 치약이 옆구리로 터져 나오곤 했지. 돈 받고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어요. 그러던 것이 지금은 세계 어느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제품들로 변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으니 대단한 발전이지요.

현대그룹 총수 정주영씨는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자동차와 조선 사업을 밀어붙여 결국 성공했지. 뚝심이 대단한 사업가야. 총리를 맡고 있을 때였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종합기계 사업으로 자동차를 꼭 해보고 싶다’면서 내게 찾아온 거야. 그래서 내가 ‘그런 일이라면 경제기획원을 통해 대통령께 말해야지 왜 나한테 왔느냐’고 물었어요. 정 회장은 ‘주변에서 하도 반대가 많아 총리님 같으면 도와주실 것 같아 찾아왔습니다’라며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어도 될 사람 같아 청와대로 들어가 함께 대통령을 설득해보자고 했어요. 대통령께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정 회장 같으면 꼭 해낼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내가 총리에게 설득당했구먼’ 하며 승낙하셨어요. 그래서 오늘날 현대자동차가 존재하는 겁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회장이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한 걸 아는지 몰라요. 아마 모를 겁니다. 내가 이야기한 일이 없으니까.

김우중씨와는 골프도 같이하고 술도 여러 번 함께 마셨어요. 이 호텔 꼭대기에 귀빈을 접대하는 곳이 있는데 외국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오면 가끔 이용하기도 했어요. 언젠가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방한했을 때도 그곳에서 김우중 회장과 함께 술을 마셨어요. 참 능력 있는 사람인데 안 됐어요.”

“사업은 타고난 사람이 하는 일”

JP와 오랜 인연이 있는 김 전 회장이지만 사실 처음에는 DJ와 더 밀접한 관계였다. 박 대통령이 서거하고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했던 80년대 초, 해외시장을 개척하느라 분주했던 김 전 회장은 현지 언론에서 집중 조명되고 있던 ‘김대중’이란 인물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어떤 면에서 감동받았는지는 본인의 입을 통해 확인한 바 없지만, 1997년 대선 과정에서 김우중 전 회장이 DJ를 앞장서 지원했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DJ는 대통령으로서, 김우중씨는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서 한동안 밀월 관계를 유지했었다. 기업인에게 권력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고 했던가. 너무 가깝게도, 너무 멀리해서도 안 되는 권력에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서 버렸던 김우중씨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워크아웃 과정에서 DJ로부터 버림받고 그룹이 해체되는 불운을 겪게 된다.

“김우중 회장은 골프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부인 정희자씨도 골프를 잘 치는 편이고, 본인도 잘 치지만 사업이 바빠 필드에 자주 못 나간 걸로 알고 있어요. 김 회장은 아도니스CC와 A-1CC를 만들었는데, 부산 동부에 있는 A-1CC에서는 나도 플레이를 해봤어요. 스페인의 골프 영웅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플레이를 하고 나서 세계 유수의 명 코스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칭찬했다더구먼. 아무튼 김 회장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는데 지금은 기업이 그의 손을 떠났고 자신도 영어의 몸이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지요.

DJ가 다른 곳에는 공적자금을 수백, 수천억원씩 주면서 왜 그 사람만 절단냈는지 이해가 안 가요.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전두환이는 국제그룹 양정모를 날려보냈고, DJ는 대우그룹 김우중을 날려보낸 셈이 됐어요. 권력을 그렇게 조자룡 헌 창 휘두르듯 하면 안 되는 거여.

아무나 실업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다 타고난 사람이 하는 일이지요. 국가가 합리적으로 실업하는 사람들을 잘 지원해서 돈을 벌게 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인데, 짓밟아버리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우중씨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남겨둔 것을 보세요. 보통사람이 아닙니다. 남이 못하는 일을 그 사람이 했으면 그 진행과정이나 결과를 존중해줘야 합니다. 속 내용은 잘 몰라도 김우중씨가 그런 대우를 받을 짓을 하진 않았다고 봐요. 그래서 상호를 ‘대우’라고 한 것일까….”

세간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김우중 회장이 “안전선을 잘 지켜 운전하라는 경제 관료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다른 차로에서 과속으로 역주행하다 사고를 냈다(경제 고위 관료)”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한마디로 대우그룹이 DJ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을 잘 따르지 않아 화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JP의 골프이야기’에서는 대우그룹의 몰락 이유를 규명하기보다는 JP의 기억 속에 있는 김우중 전 회장을 끄집어내 보는 선에서 끝내는 게 맞을 것 같다.
‘경제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 JP에게는 어려움에 처한 많은 기업가가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기업 총수들의 ‘고충 해결사’ 노릇을 해야 했다. 한화그룹도 JP의 도움을 받은 기업 중 하나다.

“난 재벌 2세들 하고는 골프를 친 일이 없어요. 자기 아버지들과 골프를 쳤으니 같이 골프 치기가 불편할 수도 있겠지. 나도 괜히 이런저런 말 듣기도 싫고. 현암 김종희씨가 창업한 한화는 원래 다이너마이트를 만드는 회사였어요.
현암은 충남 천안 사람이지. 5ㆍ16 군사혁명 이후 최고회의에서 그 사업을 함경도 출신 사업가들에게 넘겨 주려고 하던 것을 내가 막아준 일이 있어요. 같은 충청도 출신이란 점도 작용했지. 충청도 출신이 만든 몇 안 되는 기업인데 다른 데 넘겨줄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김종희)는 그렇게 해서 오늘의 한화로 발전하게 한 그 일을 참 고맙게 생각했는데 아들(김승연 회장)은 그걸 잘 모르는 모양이야. 그 뒤에도 외화 반출 문제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제대로 도와줬지. 하지만 고향 선배에게 인사 한 번 제대로 한 일이 없어요. 나 역시 거리를 두니까. 서로 각자 자기 할 일만 하면 되지 뭐….”

이코노미스트 김국진 기자 (bitkuni@joins.com)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