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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면 일깨우는 게 예술가 역할 9·11 정치색 빼고 인간애 다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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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9.11이 전세계적으로 정치적 사건이 되면서 우리는 사건의 가장 인간적인 면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 뒤 5년 동안 세계는 더 어두워졌다. 세계 어디선가 사람이 100명쯤 죽었다는 기사에도 무감각해질만큼 잔인함이 만연해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저는 잔인함이 무엇인지 겪어봤다. 잔인함이 지나면 냉소가 된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의 선한 면을 기억해야 한다. 영화인이든, 시인이든, 음악가든 그게 역할이다."

9.11사건을 다룬 신작'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개봉(10월20일)을 앞두고 올리버 스톤 감독(60)이 15일 한국을 찾아 기자와 만났다. '플래툰''7월4일생''JFK''닉슨'등 논쟁적인 미국현대사를 즐겨 다뤄온 그는 이번 영화에서는 사뭇 다른 접근법을 쓴다. 정치적인 논란 대신 당시 구조현장에 달려갔다가 건물잔해에 갇혀 힘겹게 살아난 두 경찰관의 인간적인 실화에 촛점을 맞췄다.

-9.11을 다루는 수많은 방법이 있는데 이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도움을 주러 갔다가, 남들의 도움과 스스로의 용기.가족애에 의지해 살아난 두 사람은 이 어두운 시대에 훌륭한 본보기(role model)다. 정치적 메시지가 아니라 인간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이전 작품도 정치성 보다 인간적 드라마가 우선이다. 'JFK'는 한 판사의 고뇌에 촛점을 맞췄고, '닉슨'은 수많은 사람들이 미워했던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려했던 작품이다. 이번 영화는 내가 휴머니스트이자 이야기꾼(dramstist)으로 접근한 작품이다. 다음에 9.11사건을 또 다룬다면 좀 더 정치적인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베니스 영화제에서 '알 카에다를 응징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9.11 당시 많은 미국인이 분노와 복수심을 느꼈다. 한국이든 어느 나라든 공격을 받는다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알 카에다는 1998년의 아프리카의 폭탄테러, 1993년의 무역센터 폭탄테러에 연루돼있다. 명분과 동기가 뭐든 무고한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을 죽이는 것, 더구나 그것을 신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

-부시 행정부의 이후 대외정책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9.11 직후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것은 정당한 일이었고, 깨끗한 전쟁이다. 하지만 이라크 전은 다르다. 나는 이라크 전에 꾸준히 반대하는 뜻을 펴왔고, 그 때문에 비난도 꾸준히 받았다. 이라크 전 만큼이나 심각한 문제가 미국내에서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권리가 위험에 처한 것이다. 지금 미국은 1950년대 매카시즘 때 보다 더 나쁜 상황이다.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의 핵심수뇌들이 9.11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을 곧 미국에 반대하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마침 이 날 서울에서 환갑을 맞은 감독은 한국인 부인 정정선(52)씨와 딸 타라(10)를 소개하며 돈독한 가족애를 보여줬다. 전남 신안군 하의도 태생인 정씨는 86년 뉴욕에서 감독과 처음 만나 96년 결혼했으니 20년지기에 10년커플이다. 두 번의 이혼경력이 있는 그는 "세번째 부인이자 최고의 부인"이라면서 "그녀의 강인한 정신을 사랑한다. 그 강인함이 내가 힘든 일을 겪을 때 버티게 하는 힘이다"라고 했다. 자연히 한국영화도 꽤 폭넓게 섭렵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로는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들'과 김성수 감독의 '무사'를 꼽았다. 최근에 '그녀를 모르면 간첩'을 보았다며 "거기 나오는 귀여운 여배우가 누구냐"고 묻기도 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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