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루 초청했다더니 대부분 '반부시'성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국을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한국전 참전기념비에 헌화했다. 참전용사인 윌리엄 멀로니 예비역 해병 중장 등 미국 측 인사들도 동행했다. 워싱턴=안성식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15일 새벽(한국시간) 정상회담을 마친 뒤 백악관 영빈관(블레어 하우스)에서 미국의 전직 고위 관료, 싱크탱크 책임자 등과 간담회를 했다. 청와대는 이를 '미국 여론 주도층과의 대화'라고 설명했다. "미국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인사들과 만나 한.미 관계,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행사였다"는 것이다.

이태식 주미 대사는 지난달 워싱턴 특파원들에게 정상회담 준비 상황을 설명하면서 "노 대통령이 미국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국의 사회지도층 가운데 보수와 진보, 중도 성향 인사를 골고루 초청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날 간담회에 초대받은 이들은 모두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비판적인 인사들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인사들이 섞여 있긴 하지만 공화당 측은 모두 대북 온건파들이었다.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는 부시 행정부 입장에서 본다면 '무늬만 공화당'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다.

그중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호흡을 맞추면서 북한 핵문제를 협상으로 풀려 했지만 강경파인 딕 체니 부통령 등 네오콘(신보수주의자)에 의해 밀려난 사람이다.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대사와 찰스 잭 프리처드 전 국무부 대북 특사도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쪽이다. 특히 허버드는 7일 워싱턴에서 "미국의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은 한국의 성장에 따른 변화"라며 노무현 정부의 논리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11명 중 중도 성향은 워싱턴 포스트 기자 출신인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장뿐이다. 사실 그도 부시 대통령에 대해선 대체로 비판적이다.

그는 6일 도널드 그레그 전 대사와 공동으로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포괄적 대북 제재는 중대한 실수이며, 북한 문제는 협상과 포용만으로 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때문인지 간담회의 분위기는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효과에 대해선 의문을 담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노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간담회 참석 대상에서 뺐다는 얘기가 있다"며 "미국의 여론 주도층과 대화하려면 부시 행정부와 가깝고, 그래서 백악관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들을 부르는 게 더 효과적인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또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 회담한 직후 부시를 멀리하거나 비판하는 인사들을 만난 데 대해 백악관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대부분 한반도 문제에 밝은 사람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 새뮤얼 버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웬디 셔먼 전 대북 정책조정관, 존 햄리 전 국방부 부장관(현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소장) 등 5명은 민주당의 빌 클린턴 전 행정부 각료나 관리 출신들이다.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허버드 전 대사, 프리처드 전 국무부 대북 특사(현 한국경제연구소 소장) 등 3명은 부시 행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냈다. 그레그 전 주한 대사(현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와 리처드 솔로몬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현 평화연구소장)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밑에서 관료를 지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leesi@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