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감시망 자리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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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낸 아까운 세금을 헛되게 쓸 생각을 마라-'.

시.군 등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방만한 예산 집행을 감시하기 위해 올해 도입된 주민소송제가 지자체를 견제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4월 경기도 성남시에서 첫 주민소송이 제기된 후 모두 다섯 차례 주민들이 지자체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낭비되는 세금 회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주민 감시망'이 가동되는 것이다.

서울 성북구의 박창완(47).김준수(36)씨는 성북구의회 의원들이 부당하게 사용한 업무추진비 2000만원을 환수하라며 성북구청장을 상대로 13일 서울행정법원에 주민소송을 냈다. 이에 앞서 박씨 등은 2월 주민 234명의 서명을 받아 서울시에 같은 내용으로 주민감사를 청구했다. 그러나 감사에 나선 서울시는 2004~2005년도 성북구의회 의장을 비롯한 구의원들이 단란주점에 드나드는 등 2400여만원을 부당하게 사용한 사실을 적발하고도 관련 공무원 5명을 문책하는 데 그쳤다.

민주노동당 중앙당 예산결산위원장이기도 한 박씨는 "구의원의 부적절한 외유로 구민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은 차치하고라도 낭비된 세금을 돌려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소송을 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5일 시민단체인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시민연대 부평지구'가 부평구청장.부평구 의원 등이 해외여행 경비로 부당하게 사용한 업무추진비 3000만원을 환수하라며 소송을 냈다. 4월에는 성남시가 서울공항의 비행안전구역 안에 도로를 만들어 세금 180억원을 낭비했다며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김현지(32) 사무국장 등이 소송을 제기했다. 이 밖에 7월에는 경기도 광명시 경실련 집행위원 강찬호(36)씨 등이 음식물쓰레기처리장 부실 공사 책임을 물어, 8월에는 충남 서천읍 상권회복추진위원회 정병환(50) 위원장 등이 서천군수가 업무추진비를 낭비했다며 소송을 냈다. 주민들이 소송에서 이길 경우 당사자들은 세금 낭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거나 부당하게 얻은 이득을 반환해야 한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이승종 교수는 "시민들이 주민소송같은 적극적인 참여방법으로 지방자치단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며 "앞으로 주민소송이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정부가 국회와 언론.시민단체 등으로부터 겹겹이 견제받는 반면 지방자치단체는 사실상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소송을 하기까지 시간.비용이 많이 들고, 자칫 소송이 남용되는 문제점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준봉.이수기 기자

◆ 주민소송제란=지방자치단체의 위법한 재무.회계 행위에 대해 주민들이 단체장을 상대로 이미 집행된 예산의 환수를 요구하는 제도로 올 1월 시행됐다. 소송을 내기에 앞서 반드시 상급기관에 주민감사를 청구해야 한다. 기초자치단체의 위법 행위는 광역단체장에, 광역단체의 위법 행위는 중앙정부의 주무부처 장관에게 감사청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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