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해부 '교육특구' 대치동] 4. 그래도 왜 대치동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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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낮 12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D초등학교에서는 1, 2학년 학생들이 점심식사도 하지 않고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2학년 임모(8)군은 "밥을 먹으러 집에 빨리 가야 한다"며 발길을 재촉했다.

이 학교는 인기있는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최근 전학을 온 5, 6학년생이 크게 늘어나면서 올해부터 1, 2학년 학생들에 대한 급식을 중단했다. 이 학교 金모 교감은 "급식할 수 있는 인원이 9백명가량인데 전교생 수가 1천8백명을 넘어 할 수 없이 1, 2학년생들은 집에서 식사를 하게 한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5학년의 한 학급(45명)을 조사한 결과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계속해 다닌 학생은 9명에 불과했다. 학교 관계자는 "지금 5학년생들이 입학할 당시 전체가 1백20명이었는데 지금 3백60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중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 8월말 현재 전체 강남지역 중학교 중 정원을 가장 많이 넘긴 학교 역시 대치동 D중학교다. 정원이 3백60명인데 학생 수는 이보다 53명 넘친 4백14명이나 된다.

투자 대비 효율이 낮고, 학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사교육 1번지'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치동의 위력은 여전하다. 이곳으로 들어오려는 학부모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 K씨(43)는 "대치동에 산다고 하면 선이 더 잘 들어온다. 이에 따라 애들 교육 문제로 이사왔지만 대학 진학 후에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체 대치동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우선 고학력 중산층 이상 주민들이 몰려 살다 보니 분위기가 동질적이라는 게 이 지역을 선호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곳에 산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사회의 '주류'에 편입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어딜 가나 흔한 유흥가가 없다는 점도 대치동의 큰 장점이다. 이곳에선 학부모.교수.변호사.교장을 위원으로 한 학교정화위원회에서 유흥주점이 생길 때마다 심의를 한다. 위원회의 입김이 세기 때문에 학교 인근은 물론 학원이 있는 건물에는 유흥주점이 들어올 수 없다.

이 때문에 압구정.청담동 등 다른 강남의 부촌에서도 자녀 교육상 이곳이 더 좋다며 이사를 오기도 한다.

대치동과 붙어있는 도곡동의 고급주상복합에서도 대치동 D중학교에 배정해 달라는 민원이 많다고 한다. 강남교육청 관계자는 "일부 학부모가 단체로 민원을 제기했으나 올해 한명도 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여기다 대치동 아파트의 높은 투자가치도 이곳을 선호하는 큰 이유 중 하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치동 사람들은 일종의 '선민의식'을 갖고 있다.

학부모 L씨는 "이곳 부모들의 바람은 아이들의 결혼까지 자신들보다 못한 사람과 얽히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명문대를 나와 안정된 직업을 갖고 비슷한 상대를 만나 계속 같은 부류로 살기를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모들의 바람만큼 아이들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소수의 아이는 엘리트 코스를 걷지만 나머지 대다수 아이는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다 좌절감을 맛봐야 한다.

"초등학교 엄마들은 자기 애가 뛰어난 줄 알고 특목고나 아이비리그를 꿈꾼다. 중학교에 가면 애들 실력에 반신반의하다 고등학교 학부모쯤 돼야 현실을 깨닫게 된다."

재수생 아들을 둔 P씨는 대치동 명문고교인 자기 아들 반(정원 40명)에서 올해 9명만 대학에 갔고 나머지는 재수를 한다고 했다.

이곳에 들어오는 많은 부모는 공부 잘 하고 집안 좋은 애들과 섞이다 보면 하다못해 친구라도 잘 사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이 같은 희망도 허상이다. 그룹과외도 철저하게 성적순으로 짜는 게 이 동네의 관행이기 때문이다. 지하 셋방에 살더라도 성적이 뛰어나면 서로 데려가려고 난리지만 성적이 처지는 학생은 끼워주지 않는다.

두 자녀를 둔 주부 R씨는 "애들의 학교성적에 따라 엄마까지 그룹이 정해진다"며 "처음엔 주류에 속한다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살면서 복잡한 게 많아 괜히 왔다는 생각도 든다"고 털어놓았다.

정책기획부 정철근.강홍준.하현옥.권근영 기자.조인스랜드 안장원 기자<jcomm@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사진 설명 전문>
20일 낮 12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D초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원래 점심을 먹고 가게 돼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 전학 온 학생 수가 크게 늘면서 저학년에 대한 급식이 중단됐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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