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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히긴스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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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에서 우리는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지 못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승리는 많은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패배의 대가보다 훨씬 쌀 것이다."

한국전이 한창이던 1951년 종군 여기자로 명성을 떨친 미국인 마거릿 히긴스는 '한국에서의 전쟁'이란 책을 내면서 이렇게 적었다. 동북아 군사방위선에서 한국을 빼는 '애치슨 라인'을 그은 미국이 한반도 안보를 경시한 탓에 엄청난 피를 흘리고 있지만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그런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지킬 가치가 있다는 얘기였다.

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히긴스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도쿄 특파원이었다. 그는 북한 공산군이 38선을 밀고 내려온 이틀 뒤인 6월 27일 도쿄에서 서울로 날아왔다. 그날 그가 만난 한국군 장성은 "전황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 한다. 그런 다음날 국군이 서울을 포기하면서 한강 인도교를 폭파해 버리자 히긴스도 급히 한국 피란민들 틈에 섞여 나룻배로 한강을 건넜다.

수원 비행장으로 간 그는 활주로에 앉아 인도교 폭파 기사를 쓰던 중 더글러스 맥아더 태평양 사령관과 조우했다. 맥아더는 "여기선 기사를 송고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도쿄로 가자고 했다. 동행 길에 그를 인터뷰한 히긴스는 "미국이 곧 지상군을 파견할 것"이라는 특종을 낚았다. 이튿날 다시 전장으로 복귀한 히긴스는 미군과 한국군을 따라다니며 전쟁의 참상, 한국인의 고난을 상세히 보도했다.

50년 8월 17일 한국 해병대 1개 중대가 북한군 대대 병력을 섬멸하고 경남 통영을 탈환하자 그는'귀신 잡는 해병(Ghost catching Marines)'이라고 썼다. 우리 해병대의 애칭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같은 해 9월 15일 한.미 연합군이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했을 때 히긴스는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현장을 뛰어다니며 생생한 르포 기사를 썼다.

한국전 종전 보도로 그는 이듬해 여성 언론인으론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히긴스는 책을 낸 뒤 미국에서 한국전쟁의 실상과 미군 참전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순회 강연회를 열었다. 그는 전역을 돌며 "한국을 도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동남아 분쟁 지역을 취재하다 라오스에서 얻은 풍토병 때문에 66년 46세로 사망한 그를 미국 정부가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한 것은 군인 못지않게 한.미 동맹에 기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홍보원은 두 달 전부터 히긴스를 소개하는 DVD를 만들어 방문객.초청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그걸 본 마이클 듀포 미 법무부 소속 변호사는 "미국인들도 히긴스에 대해 잘 모른다. 어쨌든 난 이 DVD를 본 뒤 한.미 관계가 피로 맺어져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홍보원에서 일하는 미국인 이마뉴얼 패스트라히는 "DVD엔 한국전에서 보여준 미국의 희생과 용기를 한국이 잊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감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보원은 최근 한.미 정상회담(14일)을 앞두고 한.미 동맹을 소중히 가꿔나가자는 취지에서 이 DVD를 미 국무부에 보냈고, 국무부도 반겼다고 한다. 홍보원이 미국 사람들을 초청해 5분 분량의 짧은 DVD를 틀어주는 일은 외교의 축에도 끼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그들에게 한.미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더 많은 미국인이 그걸 본다면 그 효과는 '개미 금탑(金塔) 모으듯' 축적될 것이다. '자주'니 '균형'이니 하는 수사학(修辭學)의 노무현 정부 외교보다 짧디 짧은 '히긴스 DVD'가 더 믿음직스러운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상일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