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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음악회도 … 결혼식도 '멋진 주택'서 우아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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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숨소리도 들리는 콘서트

9일 오후 서울 부암동 능금나무길. 차 한 대 겨우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 어귀의 하얀색 3층 벽돌집에서 경쾌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피아니스트 박로사(선화.서울예고 강사)씨의 제자들이 벌이는 음악회다. 1층 거실.주방에 50여 명의 청중이 자리 잡았다. 연주자와 청중 사이의 거리는 불과 2~3m. 긴장한 연주자들의 숨소리가 그대로 객석에 전해졌다. 거실 전면창으로 들어오는 초저녁 하늘빛과 정원 풍경은 음악의 배경으로 썩 잘 어울렸다.(사진(上))

'하우스콘서트'의 출발은 집들이였다. 올 1월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는 꿈을 현실로 이룬 김성민(38)씨가 성당 성가대원들을 집으로 불렀다. 높은 천장에 소리의 울림이 남다른 거실. 이날 초대 받은 박씨는 단박에 프랑스 유학 시절 경험했던 하우스콘서트를 떠올렸다. 박씨는 이미 학생들의 무대 연습을 위해 한 학기에 두세 차례 제자연주회를 열고 있었다. 장소가 문제였다. 소규모 연주회장을 빌리곤 했지만 객석 수가 적어도 200석은 됐다. 휑한 객석을 앞에 두고 연주하는 것도 마땅찮았고, 피아노 조율 상태도 마음에 안 들었다. 대관료도 물론 수월찮게 들었다.

"학생들에게 청중을 느끼면서 연주할 기회를 주고 싶다"는 손님 박씨와 "집이 무대로 쓰이는 게 좋다"는 안주인 김씨는 금세 의기투합했다. 정기적으로 하우스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대관료는 그랜드 피아노로 대신했다. 콘서트 때마다 빌려오려면 번번이 30만원은 들 테니 아예 집에 들여놓고 대여료로 할부금을 충당하기로 한 것이다. 하우스콘서트는 5월 첫선을 보였고, 벌써 일곱 차례나 열렸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연주자 가족이 전부였던 청중도 점차 늘고 있다. 여덟 살,네 살배기 아이들을 데리고 9일 콘서트를 보러온 주성연(38.서울 도봉동)씨는 "아이들이 계단에도 걸터앉고 간혹 2층, 3층을 돌아다니기도 하면서 편안하게 음악을 접하는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음악회가 끝난 뒤 옥상에 뷔페가 펼쳐졌다. 북악산을 앞에 두고 치킨과 김밥.샌드위치.과일 등을 나눴다. 김씨의 요리 솜씨가 빛이 나는 순간이다. 뒤풀이 장소로도 '집'은 제격이었다.

# "정원을 빌려드립니다"

삭막한 도심 생활에서 초록빛 정원은 시쳇말로 '장사가 된다'. 단독주택 정원을 빌려 결혼식을 올리고 파티를 벌이는 하우스웨딩.하우스파티가 인기를 누리는 이유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결혼식장 서울 평창동 '아트 브라이덜'(작은 사진(左))은 하우스웨딩의 선구자 격이다. '아트 브라이덜' 안경자 대표는 '혼주에게 눈도장을 찍고 축의금을 전달하면 끝인 결혼식 문화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에 하우스웨딩 사업을 시작했다. 1년여 동안 장소를 물색하다 북한산 형제봉을 마주보고 있는 평창동 꼭대기 단독주택을 찾았다. 10년 장기 임차계약을 하고 예식 장소로 쓸 수 있게 리모델링했다.

넓다고는 하지만 집은 집. 상을 지하 폐백실에까지 차려도 하객을 150명 이상 받기에는 무리였다. 이름을 아는 사람에게는 다 청첩장을 보내는 우리 결혼 문화에서 결혼식장으로는 좁았다. 처음엔 한 달에 한 건 결혼식 치르기도 힘들었지만, 한번 하우스웨딩을 경험한 사람은 모두 홍보대사가 됐다. 올 봄부터 '아트 브라이덜'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올 10월 결혼식 예약이 6월에 마감됐을 정도다. 결혼식뿐 아니라 돌잔치.칠순잔치 장소로도 이용됐고, 심지어 패션쇼도 열렸다.

'아트 브라이덜'외에 서울 삼성동 '더 베일리 하우스', 논현동 '웨딩&라이프컴퍼니 더블유' 등도 요즘 하우스웨딩 장소로 뜨고 있는 곳이다.

정원이 딸린 집을 하루 저녁 빌려 파티를 여는 것도 새로운 트렌드다. 외식에 질린 사람들이 '가정식 백반'을 찾는 격이다. 직장인 이정미(37)씨는 지난달 푸드스타일리스트 송혜진(32)씨의 서울 부암동 집에서 부서 회식을 했다. 열 평 남짓한 정원이었지만, 시원한 바람과 고즈넉한 주택가의 분위기가 호텔 저리 가라였다. 이씨는 "상업공간이 아니어서인지 훨씬 편안하게 즐겼다"고 말했다.

7월에 경기도 과천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스타일리스트 김경미(35)씨는 주변 사람들의 등쌀에 못 이겨 집을 하우스파티 장소로 빌려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집들이 격으로 몇 번 바비큐 파티를 벌인 것이 발단이 됐다. 옥상과 정원, 1층 스튜디오를 생일파티나 와인파티.돌잔치 등의 장소로 빌려줄 계획(작은 사진(右)). 김씨는 "식당의 시끌벅적한 느낌이 싫었던 사람이 많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글=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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