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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부들 관료주의 추방운동 전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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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북한이 최근 당·정 간부 및 생산단위 책임자들의 경향에 대한 반대투쟁을 촉구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북한은 각급 단위의 간부(북한에서「일군」으로 표현)들이 권력에만 의존, 명령·지시 일변도의 관료주의적 행태를 보이는데 대해 엄중히 경고하고「모범」을 보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같은 경고는 관영 로동신문과 북한 중앙방송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총서기 장쩌민(강택민)의 최근 북한방문에서 북한·중국이「사회주의원칙」고수를 천명하였던 점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들이 지적한 사회주의 원칙은 당의「영도적 역할」과「군중노선」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번 북한방문에 앞서 열린 중국공산당 136 중전회에서 이미 「군중노선」을 재천명한 바 있다.
사실 그동안 북한과 중국은 소련 및 동유럽사회주의국가들의 급격한 정치·경제개혁에 대한 대책에 부심해왔다. 이번의 북한·중국의 공동보조는 그런 점에서 주목을 끌었던 것이다. 북한은 소련·동유럽 국가의 정치개혁에서 제기된 일당 독재의 포기, 복수정당제 채택이라는 「급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이를 비판한바 있다. 북한은 소련·동유럽의 급변에 대해 나름대로의 원인규명 작업에 나섰고 그 원인이 관료주의적 경향이 팽배와 그에 다른「지도부와 대중의 유리」현상에 있다고 진단한 것 같다.
그 증거로는 지난해 말 북한을 방문했던 북한·일본 우호촉진의원연맹 일본측 대표구노주지(구야충치)씨가 북한 당 국제부장 김용순의 말을 기자회견에서 밝힌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구노씨에 의하면 지금까지 군중노선을 잘 실천해 당적지도와 대중이 잘 결합되어 있으므로 관료주의적 경향이 없으며, 따라서 동유럽과 같은 류의 개혁조치가 필요 없다고 김이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그동안 아무리「혁명적 군중노선」을 강조해왔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회주의국가들에서 드러난 문제점인 관료주의적 작풍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북한지도부도 심각한 문제로 느끼고 있는 듯 하며 그 결과 새로운「관료주의에 대한 반대투쟁」, 즉 군중노선을 대대적으로 강조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군중노선을 강조하는 사업방식은 북한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전형적인 방법을 새삼 강조하는 셈이기도 하다. 이미 청산리 방법, 대안의 사업체계 등 북한의 대중지도방식이나 경제관리방식이 모두 군중노선에 기초한 것이다.
다만 현 단계에서 군중노선이 새삼 강조되는 것은 바로 소련 및 동유럽의 정치격변에 대한 예방조처 내지 대책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새로운 군중노선 강화조짐은 이미 지난해 11월 당이론지「근로자」논설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논설은『집권당은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일군」들 속에서 대중에게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의거하여 명령하고 지시하는 관료주의적 방법으로 사업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논설은『관료주의적 사업방법, 행정식 사업방법, 행정대행, 형식주의적 사업방법 등을 철저히 극복하지 못하면 당이 관료화 되어 인민대중위에 군림하는 관료기관으로 되거나 당사업이 행정실무화 되어 당기관이 행정경제기관화 될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논설은 이어『관료주의는 결국 당과 대중을 유리시키고 당이 전체 사회에 대한 영도적 정치조직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한다』고 강조했다.
이 논설의 기본 취지는 바로 관료주의극복과 혁명적 군중노선을 관철하기 위해「반관료주의투쟁」을 전개하고자 하는 북한의 당정책을 보여준 것이다.
금년 들어 관료주의 반대투쟁은 보다 선명한 모습을 띠고 전개되고 있다.
이것을 촉발시킨 구체적인 계기는 52년에 행해진 김일성의 연설「현 단계에 있어서의 지방정권기관들의 임무와 역할」이 로동신문 1월18일자에 재게되면서부터다. 김일성의 이 연설문은 관료주의반대투쟁과 군중노선을 역설한 정권초기의 연설이다. 이 연설이 게재된 이후 로동신문은 ▲1월21일자 기명논설▲29일자 사설▲2월4일자 사설▲7일자 기명논설▲17일자 사설 등을 통해 군중노선을 새롭게 강조했다.
이들 사설 중 『지도와 대중을 결합시킴에 있어서 일군들이 군중 속에 들어가 그들에 의거하여 사업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든가 『우리 일군들은 아래에 내려가면 회의나 지도하고 일군들만 만날 것이 아니라 공장·기업소의 기계 옆과 농촌의 포전·광산·탄광의 지하막장과 건설장을 찾아가 노동자·농민·건설자들 속에 몸을 푹 잠그고 그들과 생활도 같이하고 일도 같이 하면서 예비자원도 찾아내고 정치사업도 벌이며 걸린 고리를 풀어 주어야 한다』는 대목들이 이를 단적으로 표현 한 것이라 하겠다.
현재의 경제적 당면과제와 관련한 내용으로는 『오늘의 증산절약을 위한 투쟁의 성과 여부는 일군들의 목책에 써놓은 숫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심장에 어떻게 불을 지피는가에 있다』라든가 『공장·기업소의 직장장·작업반장을 비롯한 초급 일군들의 역할을 높이는 것이 증산과 절약투쟁을 벌이는데 가장 중요하 문제』라는 등이 실려있다.
그 뿐 아니라 경제계획상의 과장된 허위계산보고가 경제실적 평가면에서 혼란을 야기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면서 이를 고쳐야 한다는 기명논설(2월20일)로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다른 최근의 보도(3월7일)도 북한에서 간부들의 당면과제가 주민들의「식의주」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이러한 때일수록 간부들이 특권을 모르는 검박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점차 가속화되고 있는 북한의 관료주의에 대한 반대투쟁은 보도매체의 논조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가시화 될 것으로 보이며, 이 같은 새로운 움직임은 당분간 계속 될 것 같다.
최근 북한의 정책기조는 지난해 말의「사상교양강화」움직임과 금년 초부터의 「증산절약투쟁」에다 1월 하순부터의「관료주의 반대투쟁」이라는 세 측면이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유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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