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있는 정부,고집있는 장관/송진혁(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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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건국 후 4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까지 독립운동을 하던 지사풍의 장관이나 정치인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가 점점 전문화ㆍ세분화하고 그에 따라 분야별로 전문지식과 경험을 쌓은 인물들이 자리를 차고 앉아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대사회는 영웅호걸이 종횡무진하는 무대일 수도 없고 호연지기로 국가경영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지사적 기풍같은 것이 우리정부나 정계에 너무 결여된 것이 아닌가,인물들이 너무 왜소화해가는게 아닌가 하는 허전함,아쉬움 같은 것이 남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굳이 만주벌판과 시베리아에서 풍찬노숙하던 독립운동지사와 같은 풍모는 아니더라도 좀더 고집스러움이 있는 장관,좀더 개성과 줏대가 있는 정치인이 아직도 필요하고 좀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리유지를 위해 이 눈치 저 눈치 보지않고 일시적 인기에 영합않으면서 소신껏 일하다가 자기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스스로 사표를 던지는 공직자상,정치적 불이익을 뻔히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윗사람과 다투는 정치인형,이런 사람들을 보고싶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나 기억이 닿는 과거를 둘러봐도 이런 사람은 극히 드물었던 것 같다. 자기 뜻으로 요직을 걸어나간 사람이 몇사람이나 있었던가. 더구나 소신때문에 윗사람과 다투다가 물러나간 사람이 몇이나 됐던가. 기억에 남기로는 작년 재선거의 타락ㆍ불법을 개탄하고 고집스럽게 선관위원장을 물러간 이회창 대법관과 우익적 소신을 앞세워 물러난 김용갑 전총무처장관 정도다.
그렇다면 그동안 모든 국정이나 정국운영이 고집스런 이견이 필요없을 만큼 척척 아래 위의 뜻이 맞았고 만사형통으로 잘 돌아갔는가.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지난 2년만 보더라도 고집있는 인물이라면 어지간히 고집을 부리고 사표를 던질 일도 여러건 있었다고 생각된다.
가령 중가평가만 하더라도 실시를 기정사실로 밀고나가다가 하루아침에 연기로 돌아섰지만 어느 누구도 공식적 반론의 제기도 없었고 그로 인해 자리를 물러선 사람도 없었다. 중평을 실시하고 연기하고 간에 모조리 위의 뜻을 따라만 갔지 여기에 무슨 고집이고 주견이고는 없었던 것이다.
최근의 3당통합을 봐도 마찬가지다. 정계개편을 하더라도 민정당간판을 내려선 안된다,합당을 한다면 평민당과 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사전에 더러 있었지만 어느날 청와대 3두회동이 통합을 발표하자 체중을 실은 어떤 반론도 볼 수 없었다.
정치문제에서만 이런게 아니다. 88년 7ㆍ7선언 후 대북한개방정책이 펼쳐지자 이 부처 저 부처가 다투어 개방을 내세우다가 공안정국이 되자 이번에는 서로 다투어 개방한 것까지 거두어들이기 바빴다. 또 노사문제만해도 한때 자율에 맡겼다가 강경개입으로 돌아섰지만 이같은 정책선회과정에서 정부내에 이렇다할 논쟁이나 용퇴가 있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1년여전 조순 부총리의 경제팀이 들어섰을 때엔 상하 할 것 없이 모두 경제개혁을 외치다가 이제 개각이 되자 상하 할 것 없이 성장일색으로 돌아서는 듯 하다.
다소나마 고집있는 정부라면 그렇게 개혁을 외친 체통을 생각해서라도 어느 한구석에서라도 개혁의 목소리가 유지돼야 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지금껏 정부나 여당은 고집과 소신을 지닌 의연한 모습보다는 시류에 따라 이리 몰리고 저리 쏠리는 국정운영과 정치행태만 보여왔다.
고집을 갖고 밀고나가 뭔가를 이루고 정착시키는 일이 없으니 이렇다 할 업적도 없는게 당연하다. 경부고속도로나 포철같은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고집이 없었던들 불가능했을 것이란 말이 많지 않은가.
만일 고집있는 공직자라면 위의 지시가 있었더라도 법안의 장타통과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요,민주화를 추진한다는 이 개명천지에 특정 입후보자에게 미행을 붙인다는 말은 나오지 않게 했을 것이다.
한걸음 나아가 대통령서부터 정부자체가 고집이 있었다면 지금껏 6공이 겪은 그런 풍랑은 겪지 않았을 것이요,물정부니 결단력부족이니 하는 말도 안들었을 것이다.
중간평가를 한다고 했다가 안하고,정호용씨의 의원직사퇴는 결코 없다고 했다가 있게 하고,지자제는 올 6월안에 꼭 한다고 했다가 연기하고 한 그런 신용잃는 곡경은 치르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 여당이 된 구민주ㆍ구공화당측도 고집없기는 마찬가지다. 4당시절 지자제 등에 관한 그들의 주장은 어디로 갔는가. 여당이 돼보니 그때 주장이 잘못인줄 깨닫게 됐다는 것인지,바람따라 물결따라 좋은게 좋다는 처세를 하기로 한 것인지 신통하리 만큼 고집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고집이 다 좋다는건 아니다. 그러나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밀고나가는 고집은 공인으로서의 신념이기에 멋이기도 하고 자랑이기도 하다. 이회창 대법관의 선관위원장 사퇴가 얼마나 신선감을 주고 멋이 있었는가. 그런 고집으로 인해 물러간다면 그것은 명예로운 후퇴요 자기의 무게를 더하는 처신이다. 필요한 시기에 그런 인물들이 요직에 재등장한다고 해도 국민의 박수를 받을 것이다.
다시 내각이 바뀌었다. 새 내각에 쏟아지는 충고나 주문이 무수히 많지만 여기에 하나 더 붙인다면 이번 개각을 계기로 이제부터는 좀더 고집있는 정부,고집있는 장관이 돼 달라는 것이다.
그저 임명되니 입각하고 해임되니 사퇴하는 장관이 아니라 소신이 안통하면 말리더라도 사표를 던지는 고집스런 면모도 나오고 그런 기풍이 감도는 정부를 만들어 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논설위원>PN JAD
PD 19900320
PG 06
PQ 01
CP KJ
CK 03
CS B05
BL 1325
GI 손장환
TI 무역ㆍ건설주 다시 빛본다/「성장정책」속 투자 유망종목
TX ◎수출ㆍ첨단산업 관련주 상승 기대/금융주 주도주 대상서 제외될 듯
○…증시에서 이승윤경제팀을 바라보는 시각이 예사롭지 않다.
새로운 경제팀은 「성장론자」들로 구성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
과거의 경험으로 볼때 정부가 경제정책에 있어 성장에 중점을 뒀을 때 주가도 크게 뛰는 경향을 보인점으로 미뤄 이같은 색깔의 새 경제팀이 장기침체의 빠져있는 증시에 새로운 활력소가 돼줄 것이란 기대다.
흔히 얘기하기 쉽게 정부의 경제정책을 성장과 안정으로 크게 나눌때 정책변화에 따라 경기 및 주가가 절대적인 영향을 받아온게 사실이다.
최근 제일증권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 80년대의 경제정책은 여건변화에 따라 성장론과 안정론이 교체되어 나타나면서 결과적으로 증시는 안정기조하에서는 상대적인 침체를,성장기조하에서는 상대적 호황국면을 나타낸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증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86,87년에는 당시 김만제 부총리가 통화공급확대ㆍ특별금융공급 등 강력한 성장정책을 추진한데다 3저현상에 힘입어 12%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김부총리 재임기간중 주가수익률이 1백41.9%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비록 국내경제구조가 급변했고,관주도의 성장정책이 과거만큼 실효를 발휘하긴 어렵지만 이미 수출과 투자촉진에 중점을 두겠다고 입장을 밝힌 새 경제팀에 증시에서 기대를 거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새 경제팀의 출범에 따라 투자패턴을 어떻게 바꿔야할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새 경제팀의 기본적인 정책방향이 수출 및 투자촉진에 큰 비중을 둘 것이 예상되는 만큼 이에 따른 투자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특히 원화절하 등으로 인해 수출이 호조를 보이게 되면 기업의 수익력이 높아지고 이는 증시에서 수출관련업종의 주가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경기의 회복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면 수출관련업종ㆍ첨단산업관련종목의 성장이 두드러지면서 주도업종으로 등장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또 정부의 설비투자확대로 건설 및 건설관련업종의 성장가능성도 크다.
지난 86년부터 88년까지 3년간 성장정책하에서 증시가 급속도로 성장할 때 성장을 주도했던 소위 트로이카주중 무역ㆍ건설주의 재등장이 예상된다.
금융주는 엄청난 증자로 인해 물량이 많아져 주가상승에 어려움이 많으며 제조업 지원을 위해 상대적으로 금융업은 실적이 저조할 가능성이 많아 주도주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우리 투자자들의 투자패턴이 아직도 중장기적인 투자보다는 단기투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대상에 투자하기를 꺼리는데 문제가 있다.
투자패턴이 중장기투자로 바뀐다면 새 경제팀의 정책아래서 무역ㆍ건설업종이 주도주로 부상하면서 증시회복을 이끌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손장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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