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체험만을 고통스럽게 썼지요" |처녀시집 펴낸 이양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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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이상희씨(30)는 처녀시집『잘가라 내청춘』(민음사간)을 펴내고 한달여 앓아 누웠다. 시를 통과의례로 여기며 고통스럽게 쓰는 이씨의 시에대한 결벽증이 불러온 병이다.
『편하게 쓰여지지 않고 시가 고통스럽게 쓰여집니다. 쓰면서도 눈물을 많이 흘리는데 써놓고 나서 그 시를 들여다보면 고통스러워서 또 웁니다.』
요즘같이 시가 흔하게 쓰여지는 시대, 등단 3년여에 얻은 시가 48편이면 과작이라 할수있다. 그녀의 과작은 시에 대한 결벽성에서 온다. 그는 진정한 체험만을 고통스럽게 응축시키기 때문에 시 또한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나타난다.
『텅 빈 칼집의/평화 거꾸로 솟구치는/불안비 속을 날아다니는/눈감은 물고기떼 혼절한/기억의 발바닥에 닿는 모래땅/나는 북이니?/불안이 툭 치면 쿵 하고 울리고/슬픔이 슬쩍 지나가도/쿵하고 울리고.』(「북」전문)
그녀의 삶 및 시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위 시에서와 같이 이씨는 자신의 내면에서「울리는」것만을 시화한다. 그것이 청춘의 「불안」「슬픔」등 극히 보편적이고 일상적인주제일지라도 심상찮은 언어들의 충돌, 압축된 구성등으로 아연 긴장을 자아내며 독자들을 시행사이에 가둬놓는다.
문학평론가 이남호씨는 이씨의 시를 『사막에서부터 탈수와 빈혈을 거쳐 드라큐라에 이른그 상상력의 공간은 명징하고 당돌하며 때로 섬뜩할 정도로 긴장감이 감돈다』며 그 긴장감은 『시인의 고통이 에너지로 변하여 투입됐기 때문』이라고 평한다.
『이제 고통스러웠던 청춘을 보냈으니 시의 모습도 변할 수밖에 없겠지요. 변화하는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것이 진정한 시 아니겠어요.』 작년 시인 원재길씨와 결혼, 부부시인이 된이씨는 현재 고려원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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