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80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소,반탁단체 임정배제 주장/첫 미소공동위서 스티코프 판깨는 인사말
46년3월6일 평양의 연안 독립동맹이 신민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로인해 독립동맹 서울특별위원회도 신민당 남조선특별위원회로 개칭되었다. 김일성과 연안독립동맹은 처음에는 서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 독립동맹이 안동에서 신의주에 들어올때에도 알력이 있었고 소련군도 독립동맹을 신용하지 않았다.
한빈ㆍ최창익ㆍ김창만 등 중요간부들이 김일성쪽으로 붙고 김일성의 허가없이 당세 확장을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신민당이란 당명을 붙일수 있었다. 나는 평양에 있을때 과거 신민당원이었다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신민당은 남조선에 침투하기 위한 당이라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제일 먼저 파견되어온 사람이 소련태생인 독립동맹 부주석 한빈이었다.
또 한사람의 부주석 최창익은 원래 ML파이기 때문에 서울 공산당내의 ML파와 연락하며 파벌을 조성하고 반 박헌영 친 김일성분파를 조직했다.
최창익과 연결된 사람은 최익한ㆍ정백ㆍ이정윤ㆍ이우적ㆍ강병도 등이며 이들은 46년 11월의 3당합당때 모두 다 박헌영을 반대하고 김일성쪽,즉 사회노동당(약칭 사로당)을 만든 사람들이다. 그러나 독립동맹안에는 한빈과 최창익 같은 사람만 있는것은 아니었다.
허정숙은 평양에 돌아와서는 최창익과 이혼하고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조선의용군 총사령 무정은 소련점령군 당국과 김일성에게 맹종하지는 않았다.
무정은 1905년에 함북 경성에서 출생했으나 서울에 와서 중앙고보에 다녔다.
사상관계로 경찰에 체포되어 학교를 퇴학당하고 북경으로 가 24년에 북방군관학교 포병과를 졸업한뒤 27년에는 중공군에 들어가 연대장이 되었다. 2만5천리 장정때 작전과장,36년 팔로군 총사령부 작전과장ㆍ포병사령관이 되었으며 중공군 총사령관 주덕과는 의형제지간이었다.
이러한 경력의 무정으로서는 자기와 비교도 되지않는 김성주(가짜 김일성)가 소련의 힘으로 정권을 잡고 극좌적 과오만 저질러 수백만명의 북한동포가 이남으로 탈출하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분을 참지못하였으나 소련과 스탈린을 직접 욕하지는 못하고 『어떤놈이라도 우리조선의 주권을 강탈하려는 놈은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대포를 쏴 당장 내쫓을 것이다』고 하며 각지방을 연설하고 다녔다. 반소ㆍ반스탈린ㆍ반김일성을 외치는 무정의 인기는 대단했다. 무정은 김일성을 반대했을뿐 아니라 독립동맹 안에서도 최창익ㆍ김창만등 아첨쟁이들을 뱀과 같이 미워했다.
미소공동위원회 제1차 회의가 드디어 3월20일 오후 1시 덕수궁 석조전에서 개최되었다. 미국측 대표는 아널드소장이고 소련측 대표는 스티코프중장이었다.
이 자리에는 얼마전에 아널드 군정장관과 교체하여 새로 부임한 러치 미군정장관과 태평양 전쟁기간중 쭉 서울에 주재하고 있던 사브신 소련영사와 교체한 포리안스키 영사의 얼굴도 보였다.
나는 미국ㆍ소련기자들과 함께 이 역사적 장면을 취재할 수 있었다. 먼저 하지중장이 소련 대표단을 환영하며 이 회의가 성공하기를 염원한다는 인사말을 했다.
다음 순서는 스티코프였다. 나는 그의 연설을 듣고 마음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조선인민은 민주주의 제정당과 사회단체를 바탕으로하여 민주자치 기관인 인민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러나 전조선인민의 내부 생활을 점차 민주화 시키는 과정에 많은 난관들이 가로 놓여 있다. 이 난관들은 민주제도 확립을 방해하려는 반역자,모든 반민주주의적 분자들의 폭력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다.
앞으로 수립될 민주주의적 조선임시정부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을 지지하는 각 민주주의 정당과 사회단체를 망라한 대중단결의 토대위에서 창건될 것이다…』고 미군정 최고 지도자들 면전에서 인민위원회를 탄압한다고 비난하고 반탁운동자는 장차 수립될 민주주의적 조선 임시정부에는 참가시키지 않겠다는 의사를 서슴지 않고 표명했다.
스티코프의 이 원칙대로라면 탁치를 반대하는 우익보수진영의 집결체인 민주의원 계통인사는 전부 배제한다는 말이다. 즉 조선에 좌익단독 정부를 수립한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우익 보수진영이 가만히 있을 리도 없고 또 미국이 받아들일 리도 없었다.
소련대표단은 남조선에 미군과 싸우러 온것도 아니고 우익과 싸우러 온것도 아니다.
반대측과 타협점을 찾아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을 깨지않고 어떻게 하든 조선에 통일민주주의임시정부를 수립하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런데 첫 인사말부터 판을 깨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