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세상 밝히는 '번개표 그 사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1935년 설립된 금호전기는 대표적인 장수 기업이다. 한때 서울 공대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은 직장으로 꼽히기도 했다. 63년 출시된 '번개표' 백열전구가 이 회사의 대표 상품이었다. 이 회사가 존립 위기로까지 몰린 것은 외환위기 직후였다. 조명 기구의 최대 수요처인 건설업종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박명구(52.사진) 부회장이 이 회사의 새 사령탑에 오른 것은 이런 위기의 한복판에서였다. 박 부회장은 고(故) 박인천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조카이자, 고 박동복 금호전기 회장의 막내아들이다. 당시만 해도 그는 조명기기 회사인 엘바산업을 경영하고 있었다.

"하루는 형님(박영구 현 금호전기 회장)이 '내일 아침 회사에 잠깐 들러라'고 전화를 하더군요. 이때가 98년 6월 21일입니다. 다음날 연구소장 겸 부사장으로 인사가 났어요."

구조조정이 급했다. 1000명에 이르던 직원을 400명선까지 줄였다. 한편으로는 영국계 투자회사인 로스차일드로부터 499억원을 유치했다. 회생카드를 마련한 박 부회장이 금호전기의 '새 빛'으로 삼은 것이 냉음극 형광램프(CCFL) 사업이었다.

CCFL은 필라멘트 가열 없이 저온에서 불이 켜지는 형광등을 말한다. 노트북 컴퓨터.LCD TV.모니터 등에 필수적인 부품이다. 때마침 LCD TV 수요가 확 늘어나면서 돌파구가 뚫렸다. 회사의 모든 역량이 CCFL 상용화에 투입됐다.

"비슷한 납품 가격인데 금호 제품의 수명이 일본 회사보다 두 배 이상 길었습니다. CCFL을 국산화한 덕에 값이 30%나 내렸다고 수요처인 삼성전자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꽤 들었지요."

2000년 608억원까지 떨어졌던 매출이 CCFL 본격 생산 이후 다시 뛰어 올랐다. 지난해에는 2113억원 매출에 208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이 회사의 매출 70%는 CCFL과 백라이트유닛(BLU) 같은 IT 조명 부문이다. SK증권 이성준 애널리스트는 "하반기부터 대형 LCD TV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CCFL 수요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올해 2800억원대, 내년엔 3300억원대 매출이 전망된다"고 말했다.

금호전기는 주로 삼성전자와 대만의 치메이옵토일렉트로닉스(CMO), AU옵토일렉트로닉스(AUO) 등에 제품을 공급한다. 회사 관계자는 "월 1700만 개의 CCFL을 생산해 세계 시장 점유율이 10%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박 부회장은 "이제 첨단 IT 조명회사로 완전히 옷을 갈아 입었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공학박사다. 그는 연세대 전자공학과 3학년 재학 중이던 1979년엔 정보기술(IT) 회사인 금파전자연구소를 만들었던 '원조 대학 벤처'이기도 하다.

지금 금호전기의 과제는 CCFL의 뒤를 이을 '먹거리'를 찾는 일이다. 박 부회장이 경기도 용인에 있는 연구소를 더욱 자주 찾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때는 영락없는 연구원이 된다.

"연구실에서 밤새 빛과 씨름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줄 아십니까. 요즘은 볼펜 심 크기의 램프를 만들고 있어요."

인재를 찾는 일도 박 부회장의 고민이다. 연초 부회장으로 승진한 그는 "아직 사장 자리가 공석"이라며 "이제 책임경영 체제를 갖추고 회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이상재 이코노미스트 기자, 사진=김현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