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대희 칼럼] 페팅의 과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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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젊은 여성이 애인과 만나 매일 6시간씩 1주일에 5일 동안 성관계를 갖는데 문제는 없는지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TV 프로를 본 적이 있다. 프로에 나온 전문가는 여성의 질이 아프지 않다면 무방하다는 처방을 내놨다.

실제로 여성은 20분 정도의 섹스로 절정에 도달하고 오르가슴의 파동을 세 차례 정도 느낀다면 섹스에 대한 욕구가 사라진다고 한다. 이와 달리 50여회의 오르가슴 뒤에도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남성에게 그럴 능력이 없어 그만뒀다는 중년 여성을 본 적도 있다. 이처럼 여성의 오르가슴은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 반응도 다양하다.

'인간의 성반응'이란 책을 저술한 매스터즈 박사는 한 여성에게 파트너를 바꿔 가며 여러 명의 남자와 연속적으로 성교를 시킨 일이 있었다. 그 결과 여성은 30번의 절정에 도달하고도 좀 더 섹스를 할 수 있는 여력을 보였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여성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섹스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남성의 흥분을 진정시키는 한편 여성의 흥분을 촉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에 충분한 페팅이 필요한 것이다.

섹스 관련 서적들을 보면 성행위는 흥분기-고원기-절정기-해소기의 4단계로 진행되는데, 흥분기와 고원기를 패팅으로 대신하고, 본격적인 성교섭은 절정기에 착수해야 실수 없는 섹스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성기 결합 이전에 여성의 성감대에 다양한 애무가 선행돼야 여성의 오르가슴이 성취된다는 뜻이다.

성감대란 물론 접촉 자극에 의해서 성적 쾌감을 일으키는 민감한 신체 부위를 지칭한다. 성감대의 으뜸은 남성에 있어 음부신경이 밀집돼 있는 포피소대나 요도구 주변이고, 여성에 있어서는 질이나 클리토리스처럼 외성기가 차지한다. 민감성이란 면에서 그보다 못하지만 젖꼭지.입술.항문.귓구멍 같은 부분도 부드럽게 자극하면 성적으로 꽤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감대다. 강한 자극 뒤의 약한 자극은 자극 효과가 없으므로 여성을 애무할 때는 감수성이 약한 쪽에서 시작해 차츰 강한 쪽으로 가야 한다.

등이나 목덜미처럼 둔감한 부위에서 시작해 귀.입술.젖가슴, 그리고 대퇴부 안쪽을 거쳐 천천히 성기로 접근해 가는 순서가 효율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인간의 감각에는 생리학적으로 볼 때 '성감'이라는 특별한 감각은 존재하지 않으며 성적 자극에 특이하게 반응하는 감각 수용체는 따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누구나 감미로운 성감을 즐기며 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학자들은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체성감각이라는 촉각.온각.냉각.통각 등의 피부감각 수용체가 감각을 집대성해 성감이란 형태로 뇌에 전달했을 때 그곳에서 새로운 쾌감을 합성하는 특수한 기능이 개발됐다고 주장한다. 생리학적 연구에 의하면 성교나 페팅에 있어서는 피부감각뿐만 아니라 내장이나 힘줄, 또는 관절 등으로부터 감지되는 심부감각도 성감으로 변형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성감대는 전신에 고루 분포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피부나 기관 중에서 특히 체성감각의 수용체가 다량 분포돼 있는 부위가 생기고, 그곳을 특별히 지칭해 우리는 성감대라 부른다. 이 성감대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어떤 여성은 발바닥에서 성감을 느끼고 어떤 남성은 등에서 느낀다고 말한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면서 성감에 변화가 생겼다. 이 때문에 인간은 후각.청각.촉각 등 대뇌를 자극해 성중추를 흥분시키는 감각기관들이 성행위 중에 자극받기 쉽도록 만들어져 있다.

곽대희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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