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볼리비아 대통령 사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한달 넘게 계속된 볼리비아의 유혈 민중시위 끝에 현직 대통령이 사임했다. 로이터 통신은 18일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대통령이 국정에 책임을 지고 사임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또 그를 승계한 카를로스 메사 신임 대통령이 시위를 이끌었던 인디오계 정치세력과 정국 안정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신임 대통령의 정치 기반이 약하고 시위의 원인인 경제난에 대한 뾰족한 해법도 없어 정국은 여전히 불안하다. 외신들은 이번 시위 도중 적어도 74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불명예스러운 중도 퇴진=로사다 전 대통령은 17일 오후 의회에 사임 의사를 통보했다. 이로써 그는 남미에서 1997년 이후 임기 중 물러난 여섯번째 대통령이 됐다. 2000년 이후론 네번째다. 지난달 중순 이후 계속된 반정부 시위가 갈수록 거세지는 한편 연정 파트너였던 신공화세력당이 연정 이탈을 선언하자 계엄령 발효 6일 만에 권좌에서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이번 시위는 연평균 8.5%에 이르는 실업률로 사회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치닫는 상황에서 천연가스 수출 정책을 강행하면서 촉발됐다. 국민 감정이 안좋은 칠레를 통해 가스가 수출된다는 점도 불만을 가중시켰다. 볼리비아는 가스 개발 비용 대부분을 해외에서 조달해 수익금의 18%밖에 쥘 수 없는 데다 그나마 이 돈도 정치자금 제공 의혹을 받는 몇몇 민영기업에만 돌아가도록 돼 있다.

국민들이 '국부가 유출된다'며 거세게 저항하자 로사다 전 대통령은 지난주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승부수를 던졌으나 각료들의 반발 사퇴가 잇따랐다.

특히 로사다 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불과 25%의 지지율로 당선해 취임 이후 살얼음판 정국을 걸어왔다.

이와 함께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에 동조, 국내 코카인 재배 억제 정책을 편 것도 치명적인 부메랑이 됐다. 대체작물이나 일자리 제공 등 후속 대책 없이 코카인 농장 고사 정책을 펴자 생계수단을 잃은 주민들이 '죽기살기식'으로 반정부 투쟁에 나선 것이다.

◇정국 안정 곳곳에 암초=헌법상 신임 카를로스 대통령의 임기는 2007년까지다. 하지만 카를로스 대통령은 당적이 없는 등 정치기반이 취약, 정국 주도권은 인디오계 정당과 보수파 신공화세력당이 쥘 가능성이 크다. 카를로스는 18일 수도 라파스의 빈민촌을 찾아 안정을 호소하는 한편 의회에 대통령 선거를 앞당겨 실시하자며 공세를 취했다.

또 에보 모랄레스 사회주의운동당 총재에게도 "지지자들의 시위 자제를 부탁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17.1%를 득표해 로사다 전 대통령과 결선 투표를 벌이는 등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명이다.

그러나 프레센시아 등 현지 언론은 "카를로스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성급한 민영화 정책 강행으로 빚어진 중산층 몰락, 실업 급증, 고인플레 등 바닥에 떨어진 경제문제"라며 "난마처럼 얽힌 정국이 그의 발목을 잡을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정용환 기자

<사진설명전문>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볼리비아 대통령이 지난 17일 전격 사임, 대통령직을 승계한 카를로스 메사 부통령이 18일 수도 라파스 인근 엘알토에서 시위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 74명이 숨진 볼리비아의 반정부 시위는 산체스 대통령의 사임 다음날인 18일 진정세로 돌아섰다. [엘알토 AFP=연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