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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의 두얼굴」이 두려운 유럽/폴 케네디 미 예일대교수 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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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제ㆍ군사적 지배 부활은 기우/비스마르크 시대완 상황 달라
20세기 유럽문제의 가장 큰 현안이 돼 왔던 통일독일의 창시자였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권좌에서 몰락한지 바로 1백년이 되는 오는 18일 앞으로 동독의 장래를 결정할 중대한 고비가 될 자유총선이 실시된다는 사실은 깊이 음미해 볼만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비스마르크가 권력을 장악하기전,즉 1862년까지 독일땅에는 크고 작은 39개의 영방국가만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1890년3월18일 그가 젊고 야심만만한 독일황제 빌헬름2세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났을때는 통일된 독일제국이 등장,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군사력을 갖추고 유럽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있었다.
잘 훈련된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이러한 군사력과 경제력의 조화는 당시 유럽의 세력균형을 깨뜨렸고,두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중요한 요인이 됐다.
따라서 독일문제의 앞날을 생각함에 있어「비스마르크제국」의 이야기로부터 어떠한 역사적 교훈을 도출할수 있을까하는 문제는 심사숙고해 볼 가치가 있다.
이것은 독일국민을 위해서는 물론 인접국가들의 근심과 불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폴란드인이나 체코인,그리고 소련인은 물론 심지어 지금은 서독과 맹방관계에 있는 프랑스인에게도 과거의 막강한 독일이 그들에게 자행했던 행위에 대한 기억은 곧 실현될 독일통일에 대한 그들의 입장에 아직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최근호의 겉표지 그림은 이러한 걱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 삽화의 윗부분은 마음씨 좋게 생긴 바이에른지방의 농부가 웃고 있는 모습인데,이 그림을 거꾸로 보면 비스마르크와 비슷한 난폭한 프로이센 군국주의자 모습이다.
통일된 독일은 과연 유럽의 평화에 위험스럽기만한 존재일까.
1860년대 독일통일운동을 막아보려했고 제1차세계대전 이후인 1919년 독일의 자르란트주와 라인란트지방을 독일영토에서 떼어내려했던 일이 몇몇 유럽열강들의 실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동ㆍ서독의 통일을 막아보려고하는 노력 또한 패착이 될 것이다.
대다수 독일국민들의 감정을 고려해 볼대 이슈가 되는 오직 한가지는 「과연 통일이 될 것인가」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형태로 통일될 것인가」하는 문제다.
제1차대전 발발전까지 독일은 동구에 대한 경제적인 「자석」역할을 해왔으며 제2차대전 발발전까지도 그랬다.
그리고 이제 철의 장막이 붕괴되면서 독일은 동구는 물론 여타지역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자석으로 재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 EC(유럽공동체)가 존재하고 있고 국가간 협력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이 문제가 그처럼 중요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고양된 독일의 경제력으로 유럽대륙을 지배하고 싶은 「근질거림」이 부활될 것이냐의 문제다.
그러한 사태가 발생할 외부적인 가능성을 완전 부정할 수는 없으나 여러 증거들을 종합해볼때 그에 대한 답변은 「노」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우선 새로운 독일통일은 국민들의 민주적 의사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통일」이지 결코 비스마르크식 외교 술수나 강력한 군대에 의한 위로부터의 통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일은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화적 압력에 의해 통일될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 열강들이 인접국을 잠재적인 적으로 보고 전쟁을 국가정책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비스마르크시대와는 사뭇 다른 집단안보체제내에 통일독일은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 유럽안보질서가 완벽하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왜냐하면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는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의 먼장래에 여전히 의문부호를 남기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럽의 주요맹방들이나 소련과 군축작업을 가속화해 모든 유럽국가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내고 어떤 영토적ㆍ인종적분규도 더이상 재발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러한 과업이 이뤄지면 우리는 새로운 독일이 새로운 유럽과 법적ㆍ정치적ㆍ경제적,그리고 군사적으로 평화공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폴 케네디 약력
▲45년 영국 월젠드온 타인생 ▲영 뉴케슬대 졸 ▲영 옥스퍼드대 박사학위 ▲현 미 예일대교수(역사학) 영국왕립역사학회회원 ▲저서 『강대국의 흥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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