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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깊이읽기] '10년 부하' 김성진이 터놓는 박·정·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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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표적인 '10년 부하'는 김정렴 비서실장, 오원철 경제2수석, 박진환 경제특보, 김성진 청와대대변인(이후 문공부 장관)이 꼽힌다. 이 중 다른 이들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회고록을 내놓았으나 김성진씨만이 본격적인 책이 없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과 남북한의 현대사를 망라해 회고록을 썼다.

책의 부제는 '그의 개혁정치, 그리고 과잉충성'이다. 지은이는 박정희의 대표적인 개혁정치로 유신을 꼽는다. 또한 1972년 10월 유신을 "국정의 일대개혁"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서구식 민주주의' 이상론을 펴던 비판론자들을 겨냥해 "유신은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깨닫지 못하고 허망하게 사막의 오아시스만 찾고 있던 그 당시 우리에게 하늘이 벌을 주느라고 퍼부어준 시련"이라는 역설법을 구사한다.

'과잉충성'은 유신 독재의 부정적인 면을 해설하는 키워드다. 남북대화를 자신의 입지강화에 이용하고 김대중 납치라는 무리수를 저지른 이후락, 대통령의 마음을 독점하려한 차지철, 그와 혈투를 벌인 김재규…. 이런 부하들이 육영수 여사의 사망으로 흔들린 박정희의 빈 자락을 파고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정권에 몸 담았던 사람으로서 권력기관 등에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사죄한다"고 적었다.

박정희 독재에 대한 해명도 담겼다. 김일성의 스탈린식 우상독재와 박정희의 개발.개혁 독재가 어떻게 달랐는지, 그래서 남북한이 지금 어떻게 달라져 있는지,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대에선 이런 역사를 간과하고 왜 좌파로 흐르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이 베트남전 파병과 안보협력을 통해 한미동맹을 강화시킨 과정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현 정국을 우려한다. "후속 정권의 비 시장경제적 정책과 민족주의를 빙자한 반 민주적 정권 운영으로 마침내 국가의 정체성까지 시빗거리가 되고 건국 초석의 일부였던 한미동맹마저 파국의 위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책에는 비화들도 많다. M16 소총 제조사인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의 중역 데이빗 심프슨이 기록한 박 대통령 이야기도 있다. "더운 여름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에어컨을 켜지 않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소총 구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100만달러가 든 봉투를 주었다. 대통령은 되돌려 주면서 말했다. '이 돈만큼 소총을 더 주시오.'"

김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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