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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뛰어 흉악범 잡았다/구로구 형사반장 이영창 경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제보 없이 수도권 셋방 다 뒤져/“35일간 고락 함께한 부하들에 감사/공범 김태화도 잡아 명예 되찾겠다”
『방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조경수가 제 가슴을 온몸으로 밀치며 덤벼들었어요. 겁이 난다거나 밉다는 생각보다 「찾았다」는 생각이 앞서 어찌나 반갑던지… .』 서울 구로구 샛별룸살롱 4명 집단살해사건의 범인 조경수(24)를 검거한 구로경찰서 형사3반장 이영창경위(47)는 시민제보 없이 경찰스스로의 힘만으로 발로 뛰어 범인을 잡은 것이 무엇보다 자랑스럽고 대견스럽다고 했다.
이경위가 이 사건 수사본부의 전담반장이 된 것은 사건이 이경위의 당직날 발생한 것이 인연.
『죽을 죄를 진 기분이었습니다. 더구나 수배된 범인이 미장원 강도를 잇따라 하고 애인까지 빼돌려 갔을 때는 고개를 못들었습니다. 한편으론 「범인에게 질수는 없다」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이반장은 은신처를 찾아야 한다는 판단,팀(12명)을 이끌고 변두리 싸구려 셋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서울 구로구ㆍ가리봉동과 대전의 은신처였던 셋방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계약 명의가 「정주현」(김태화의 가명) 또는 「조영호」(조경수의 가명)로 되어있고 보증금 10만원ㆍ월세 7만원이하의 영세민용 단칸방이라는게 전부였다.
『함께 3박4일을 지낸 조의 애인 이모양(20)이 평택에서 조가 내렸다고 진술했지만 연고가 전혀 없는 소도시에 범인이 숨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반장팀은 서울시내 노원구를 제외한 변두리 전역과 성남ㆍ광명ㆍ부천ㆍ인천ㆍ안양ㆍ역곡의 영세민촌을 샅샅이 훑었으나 허사였다.
『한강에서 진주알을 찾는다는 막연함과 허탈감에 맥이 빠지더군요. 이땐 문득 애인 이양의 진술중 「대학생으로 가장하고 학생용 가방을 들고다닌다」는 말이 떠올라 대학생이 많은 수원을 생각했지요.』
수원에 가서 역ㆍ터미널에서 가까운 영세민촌을 물으니 모두 세류동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반장팀 12명은 점심식사를 함께 한후 2인1조로 복덕방ㆍ만화가게를 뒤지기 시작했다.
『불과 10여분만에 왕병렬경장(38)조가 복덕방에서 「정주현」을 찾아냈다는 연락이 오더군요.』
점퍼를 입고있던 이반장은 즉시 신사복으로 갈아입고 팀 전원을 소집,셋방을 찾아가 포위한뒤 주인아주머니를 불러냈다.
겁에 질린 주인 아주머니를 설득,잠자는 조를 깨우는데 1분미만이었지만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혹시 범인들이 아니면 어쩌나하는 조바심도 지울수 없었다.
『문밖으로 뛰쳐나오던 조가 5명이 둘러선 것을 보고 창문으로 기어오르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가스총을 쏘았어요. 동시에 뒤에 있던 반원들이 권총 공포 2발을 쏘자 조는 푹 주저 앉더군요.』
붙잡힌 뒤의 조는 모든것을 체념한듯 담담한 표정으로 그동안의 범행을 순순히 털어놓아 오히려 측은한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35일간 집에도 못들어가고 침식을 같이했어도 불평 한마디 없이 고생해준 부하들이 눈물겹도록 고마울 뿐입니다. 이제 나머지 공범 김태화도 마저 잡아야 숙제를 다하는 셈이지요.』
이경위는 전북 정읍이 고향으로 67년 순경으로 공채되어 고향에서 경찰생활을 시작,79년 상경한후 구로서 창설요원으로 줄곧 강력형사만 지냈다. 최근에는 만화가게 모녀피살 사건을 직접 해결하기도 했다.
부인 김선희여사(44)와 1남3녀가 있으며 구로서 경비과 이인섭경장(34)이 친동생으로 형제 경찰관이다.<박수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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