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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브레즈네프 독트린/김영희(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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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역사에 자명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종교적인 냄새를 풍기는 용어가 나온다. 19세기 중엽 미국사람들은 서반구를 지배하고 미주대륙 다른 나라들의 운명을 책임지는 것이 그들에게 부과된 운명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자명한 운명이라는 발상이 먼로 독트린과 맥을 같이 하는것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은 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운명이 떠맡긴 사명에 따라 멕시코와 전쟁을 하여 텍사스를 병합한것을 시발로 캘리포니아,뉴멕시코,푸에르토리코를 얻고 파나마운하와 쿠바에 대한 독점적인 지배권을 장악했다. 20세기초에 들어와서도 시어도어 루스벨트대통령은 미주대륙에서 비행과 무능이 문명사회의 결속을 무너뜨리는 일이 있으면 미국은 국제경찰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선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이 자명한 운명론의 기치를 높이들고 미국은 중남미를 그들의 뒷마당으로 만든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시대에 한동안 중남미외교의 기조가 선린외교로 바뀌었지만 전후냉전시대를 맞으면서 미국은 다시 미주대륙의 경찰 지위를 강화했다. 특히 1959년 쿠바에서 카스트로의 혁명이 성공하여 친소마르크스주의 정권이 들어선 뒤로는 쿠바의 픽스만침공에서 미국해병대의 도미니카공화국 상륙과 최근 파나마에서 공공연히 벌인 「노리에가사냥」에 이르기까지 자명한 운명의 망령은 맹위를 떨쳤다. 오늘의 국제정치 용어로 바꾸면 미국판 제한주권론(브레즈네프 독트린)이라고 할만한 이 정책의 극치는 선거를 통해 합헌적으로 등장한 칠레의 아옌데정권을 73년 CIA공작으로 전복한 사건이다.
지금 미국언론이 주도하는 세계의 여론은 니카라과의 대통령선거에서 공산당을 포함한 야당연합회 차모로후보가 지난 10년동안 이 나라를 통치한 혁명지도자 오르테가를 누르고 당선된 것을 보고 이념에 대한 빵의 승리라고 평가한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공동으로 파리에서 발행하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영국의 중남미문제 전문가의 입을 빌려 니카라과의 선거결과는 낭만에 대한 현실의 승리라고 단정했다. 여기서 말하는 낭만은 환상이나 이념을 뜻할 것이다.
이런 평가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예외없이 오르테가정권의 경제정책 실패와 8년째 계속된 좌익산디니스타정부와 미국지원하의 콘트라게릴라간의 내전으로 거덜이 나버린 민생이다. 아닌게 아니라 몇가지 중요한 통계를 보면 산디니스타정권하의 니카라과 경제는 이미 파탄지경에 빠졌다.
그동안의 내전으로 인한 재산피해는 1백22억달러로 추산된다. 국방비는 예산의 36%를 차지하고 있다. 인플레는 88년에는 3만3천%,89년에는 1천7백%. 실업률은 25%,외채는 65억달러다. 이런 통계가 인구 3백50만명에 국민총생산 29억6천만달러,연간개인소득 8백30달러인 나라의 것일때 사태의 심각함은 스스로 자명하다.
그러나 오르테가의 혁명을 좌절시킨것이 국민들이 감당할수 없을 정도의 민생고였고 그 민생고의 원인이 미국의 경제제제와 함께 우익콘트라반군과의 내전이었다면 그 내전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는 자명한 운명론을 믿는 미국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해 넣지 않고는 오르테가의 패배 원인을 진단하고 차모로정권하의 니카라과 장래를 전망할수가 없을 것이다.
1979년 오르테가의 무장게릴라가 무너뜨린 정부는 1936년부터 니카라과를 족벌장기독재로 다스린 악명높은 친미 「소모사왕조」였다. 소모사일족은 이나라 경작자와 기업의 10%를 소유할만큼 부패하여 그들의 몰락을 가져온 혁명은 중남미역사상 가장 광범한 대중의 지지를 받은 혁명으로 기록될 정도였다.
이번 대통령선거에 관한 분석에서 정확히 지적된것처럼 오르테가의 혁명평의회는 니카라과의 복수정당을 중심으로하는 다원적인 정치제도를 정착시키겠다는 공약으로 혁명초기에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민간기업의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점이 특히 강조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반산디니스타정책은 혁명정부의 노선을 반미ㆍ친소ㆍ친쿠바로 급선회하게 만들고,그 필연적인 결과로 미국중앙정보국의 자금지원을 받고 국경넘어 온두라스에 기지를 둔 콘트라반군의 도전을 받게 된것이다. 인구 3백50만명의 작은나라가 15만명 규모의 군대를 유지할수밖에 없었던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콘트라의 공세가 강화되는 것과 때를 같이해 82년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재야세력을 탄압하고,언론에 대한 검열을 실시하고,노조활동을 제한하고,가톨릭과 불화하고,비판적인 신문을 폐간시켰다. 미국의 레이건대통령은 니카라과가 소련의 중남미 교두보가 될것을 걱정했다. 미국의 압력이 계속되고 오르테가의 현실주의적인 양보가 없었다면 레이건이 걱정한 사태가 실제로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국 미국은 산디니스타정권으로 하여금 국민생활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정책을 펴지 않을수 없게 만들어 놓고는 차모로후보에게 4백만달러의 선거자금을 지원하면서 민생고를 가지고 오르테가 후보를 집중공격하여 사태를 낙관한 오르테가에게 통한의 패배를 안긴 것이다.
미국의 이런 정책과 전략을 부도덕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분명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니카라과의 대통령선거는 처음부터 오르테가와 차모로의 대결이 아니라 오르테가와 미국의 대결이었다는 점이다. 도덕적인 가치판단을 떠나서 몸집만 가지고 말하면 그것은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같았고,결과는 성서에서와는 반대로 골리앗이 이긴 꼴이다.
중남미역사를 배경으로 파나마와 니카라과 사태를 보면 소련이 동구에서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시내트라 독트린(독자노선)으로 대치하고 있는 때에 미국은 중남미에서 미국판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강화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미국은 언제 동구에서의 소련같이 민족자결과 내정불간섭을 중남미 외교의 기조로 삼을 것인가.<본사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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