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in] 한국·중국·동남아 '동양의 미' 뽐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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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006년 가을, 아시아는 비엔날레(2년 마다 열리는 국제현대미술제)와 사랑에 빠졌다. 한국, 중국,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에서 잇따라 비엔날레가 열린다. 이 가운데 한국은 4개 비엔날레를 한꺼번에 열어 최다 개최국이 됐다. 싱가포르와 베트남은 올해 처음 비엔날레를 만들었다. 세계 미술계는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비엔날레 창설 열기를 신기하게 지켜보고 있다. 100년 넘는 비엔날레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이나 현대미술의 본바닥인 미국 대륙에서 비엔날레의 영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반면, 왜 유독 아시아에서만 비엔날레가 더 힘을 받는 것일까.

미술계 전문가들은 현대미술의 경험이 짧은 아시아가 새로운 미술 경향에 대한 공부와 이해를 웬만큼 끝내고 자신 있게 나설 때가 된 것을 첫 요인으로 꼽는다. 축적된 작가 군과 일정 수준에 올라선 작품성이 비엔날레라는 국제 미술 발표장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김선희(상하이 히말라야 아트센터 예술감독)씨는 "자국의 전통 미술과 외래의 현대 미술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아 고민하던 미술인들이 그 접점을 찾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 미술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외면하던 서구 비엔날레에 대한 비판과 그 대안 제시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미술이 나아갈 향방을 주도하던 서구 미술에 아시아 미술이 도전장을 낸 것이다. 가사하라 미치코(도쿄사진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구색 맞추기로 아시아 작가를 끼워넣던 서구 비엔날레의 그늘에서 독립해 제 목소리를 낸다는 뜻이 깊다"고 해석했다.

아시아 각국이 비엔날레 창설에 뛰어든 핵심 동력을 정치와 경제 요인에서 찾는 전문가도 많다. 비엔날레가 전시 주제 선택이나 사회성 짙은 작품 등으로 정치 또는 사회 분야에서 파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한 상징으로 탄생한 '광주비엔날레'가 대표 사례다.

한국과 중국이 일군 급속한 고도 성장의 추진력이 미술계와 미술시장으로 연결돼 비엔날레로 터져나왔다는 얘기도 설득력 있다. 지난 1~2년 새 세계 미술시장을 놀라게 한 중국 현대미술의 급격한 가격 상승은 한 징표다.

비엔날레를 보려 몰려오는 관람객이 가져올 관광산업 활성화에 기대를 거는 곳도 있다. 비엔날레가 한 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도시 관광 개발 정책과 맞물릴 수 있어서다. 4일 제1회 비엔날레를 개막한 싱가포르 '국가예술이사회'의 한 관계자는 침체한 경기 되살리기와 관광 수입 증가가 비엔날레 창설의 한 목표임을 숨기지 않았다.

싱가포르 비엔날레 현장에서 만난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도 이런 점을 지적했다. 그는 "새로운 미술 이슈를 제기하는 비엔날레 본연의 기능보다는 개최국의 문화 역량 과시나 관광 부가가치 창출에 더 열을 올리는 것이 최근 비엔날레의 주요 흐름"이라며 "씁쓸하고 아쉽다"고 말했다.

미술전문지 '아트 아시아 퍼시픽' 2006년 가을호 특집 제목은 '아시아의 비엔날레 붐'이다. 일레인 편집장은 "비엔날레는 민족주의와 국제주의를 동시에 찬양하는 문화행위"라고 정의한다. 그는 또 "미술은 세계적인 것인가, 지역적인 것인가"라고 자문하며 "아시아에서 치러지고 있는 10여 개 비엔날레가 지금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썼다. 한국 비엔날레가 보여주고 있는 것,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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