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 명 자립 도와준 '빈자의 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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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무담보 대출금으로 가금류를 키우고 있는 가정을 방문한 유누스 박사(왼쪽에서 둘째).

빈곤 퇴치에 앞장서 온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66.사진) 박사가 제8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서울평화상 문화재단(이사장 이철승)은 '무담보 소액대출제도'(Micro credit)를 창안해 빈민들의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유누스 박사를 수상자로 정했다고 6일 발표했다.

이철승 심사위원장은 "전 세계에서 추천받은 100여 명을 대상으로 심사를 한 결과 빈곤 타파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전 세계 빈민들에게 자활의 길을 열어준 유누스 박사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누스 박사는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있는 있는 사람들을 내버려두지 않는 '빈자의 대부'다. 방글라데시는 '비가 새지 않는 집에서 사는 것'이 가난 탈출의 기준으로 통하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이 나라는 1974년 대홍수로 국토 절반이 물에 잠기는 재앙을 겪었다.

다카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밴더필트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72년부터 치타공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그는 대학 옆의 자나타 국립은행 지점을 방문, 극빈계층에게 대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유누스박사는 자신이 보증을 서주고 대출을 알선해줬고, 이 같은 방법으로 5년 동안 500가구를 도왔다. 79년부터는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이 유누스박사의 무담보 소액대출 운동에 동참했다.

그는 73년 고리대금업자에게 시달리고 있는 시골 마을 주민 42명에게 자신의 돈 27달러를 무담보로 빌려주는 것으로 무담보 소액대출을 시작했다. 3년 뒤에는 아예 교수직을 버리고 그래민은행을 설립, 이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유누스 박사는 "빈곤은 게으름과 무능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는 담보대출과 같은 사회구조에 기인한다"며 "신용은 인간이 가진 기본권"라고 주장해왔다. 지금까지 600만 명의 빈민들에게 자립기반을 마련해 줬고, 이 중 58%는 가난에서 벗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그는 경제활동을 원하는 주부들에게 대출을 전폭적으로 해줘 여권신장에도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그래민은행은 현재 직원 1만8151명, 2185개 지점를 운영하는 거대은행으로 발전했다.

무담보 소액대출제도는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카메룬 등 저개발국은 물론이고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전 세계 37개국 9200만 명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유엔은 유누스박사의 활동을 기려 2005년을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해'로 정하기도 했다. 유누스 박사는 이날 서울평화상문화재단을 통해 "나와 그래민은행이 펼쳐온 빈곤퇴치 운동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아 매우 영광스럽다"고 수상 소감을 전해왔다.

성백유 기자

◆ 서울평화상=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념하고 인류화합과 세계평화 정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90년 제정됐다. 2년마다 수상자를 발표한다. 시상식은 10월 19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상패, 20만 달러의 상금이 주어진다.

서울평화상 역대 수상자

제1회(1990년)=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

제2회(1992년)=조지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

제3회(1996년)=국경 없는 의사회(MSF)

제4회(1998년)=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제5회(2000년)=오가타 사다코 유엔 난민고등판무관

제6회(2002년)=옥스팜(국제구호단체)

제7회(2004년)=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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