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는 감시 사각지대 모기업 퇴직자들의 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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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자회사 직원들로 이뤄진 발전노조 조합원들이 4일 파업을 철회하고 해산하고 있다. 취재팀이 분석 대상으로 삼은 30개 공기업의 경우 자회사가 75개에 이른다. [중앙포토]

공기업이나 산하기관 같은 '숨은 정부'의 확대는 방만한 경영을 초래한다. 감시의 사각지대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방만한 경영은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

◆ 늘어나는 공기업 인건비="공사 사장들 간에 무슨 노조 있어요? 왜 다 9.8%예요?"

2004년 3월 한국관광공사의 비상임이사 제프리 존스가 이사회에서 한 발언이다. 사장 임금을 9.8% 올리겠다는 안을 심의하는 데 참고자료로 첨부된 다른 공기업 사장의 임금인상률도 똑같이 9.8%였기 때문이다. 서로 실적이 다른 공기업들의 임금인상률이 한결같이 9.8%였기 때문에 '사장 노조'에 비유하며 공기업들이 임금 담합을 했느냐고 지적한 것이다. 9.8이란 숫자는 두 자릿수 인상률을 피하기 위해 채택된 것이었다. 당시 국내 경기가 좋지 않았는데도 두 자릿수 가까운 인상안이 논의된 것이다. 결국 9.8% 인상안은 원안대로 관광공사 이사회를 통과했다.

공기업 임금은 수년간 방만한 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되어 왔다.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선 공기업의 각종 편법 임금인상 사례들이 지적됐다.

▶현재 인원이 정원보다 줄었는데도 정원을 기준으로 인건비를 책정해 놓고 그 차액만큼 임금을 인상해 주거나(조폐공사 등 8개 기관)▶급여에 포함해야 할 교통비.차량비 등의 복지비를 별도 항목으로 처리 (수자원공사 등 13개 기관)하는 식이다. 공기업 복지비에 포함된 항목은 민방위날 행사비, 생일축하금, 상급학교 진학기념품, 배우자 생일기념품, 손수 운전비, 명절기념품, 조석(朝夕) 식비 등 '종합선물세트'를 방불케 했다.

이런 항목의 비용들이 인건비에서 누락돼 있는데도 최근 공기업의 인건비 지출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뛰어넘었다.

2002~2004년 14개 대형 공기업의 인건비 상승률은 연평균 9.1%로 정부 지침인 4.7%의 두 배에 달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와 석유공사 같은 기관의 인건비 지출은 각각 9.8%와 12.8% 늘어나 지침의 두 배를 초과했다. 공기업의 지출은 곧바로 국민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 공기업의 자회사는 관리 사각지대=본지 취재 대상인 30개 공기업의 자회사는 김대중 정부 시절 48개에서 현재 75개로 늘어났다. 발전사업 개편을 위해 한국전력에서 쪼개져 나온 자회사도 있지만,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인 그랜드 코리아레저㈜처럼 새 사업에 뛰어들면서 만든 자회사도 적지 않다.

이들 자회사는 일반 상법을 적용받는 회사라는 이유로 예산 등에 있어 정부의 감시를 받지 않는다. 대주주인 모회사가 관리할 뿐이다. 이처럼 감시를 받지 않기 때문인지 19개 자회사의 2002~2004년 임금 인상률은 1인당 14.2%로, 모회사인 공기업(7.1%)의 두 배였다.

특히 상당수 공기업은 퇴직 직원을 자회사에 내려보내고 있다. 한국가스공사의 자회사인 가스기술공사는 이사 7명 중 6명이 모회사 직원 출신이다. 경영을 감시하기 위한 비상임이사 4명 가운데도 3명이 모회사 출신이다.

지역난방기술공사는 퇴직 직원이 차린 자회사에 낙찰가를 미리 알려주고 경쟁사를 의도적으로 낙마시켜 지난해 감사원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석유공사도 정부의 규칙을 어기고 퇴직 직원이 세운 회사와 수의계약을 맺은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 산만한 정부 관리체계=우리나라 공기업의 관리는 해당부처,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가 관여한다. 지난해 석유공사에 대한 감사원 감사에선 "예산처는 임금 편법인상을 알고도 조치하지 않았으며 관리부처인 산자부는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방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리체계가 세 개로 분산돼 있다 보니 감시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일관성 없는 관리법도 감시의 사각지대를 만드는 요인이다. 한국전력.지역난방공사.가스공사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비슷한 성격의 공기업이다. 그러나 정부투자기관법.정부산하기관법.민영화법의 각각 다른 법으로 관리되고 있다.

세 기관 중 한국전력만이 기획예산처의 예산지침을 따르고 있고 나머지 두 기관은 정부의 지침을 받지 않는다. 가스공사는 외부경영평가도 받지 않는다. 대주주는 정부인데 감시를 받고 있지 않으니 방만한 경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탐사기획 부문=강민석.김은하.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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