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의 코라손(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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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니카라과 국민학교의 산수교과서를 들여다 보면 섬뜩한 느낌이 든다. 덧셈과 뺄셈을 설명하는 데 수류탄 그림을 쓰고 있다.
지난 79년 7월 43년간 권력을 세습하면서 독재와 부패로 얼룩졌던 소모사 정권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산디니스타정권이 국민들에게 무한한 자유와 풍요,그리고 평화가 가득한 「새 니카라과 건설」을 부르짖으며 기껏 내놓은 교과서가 그 모양이다.
니카라과는 지난 11년간 산디니스타정권에 반대하는 콘트라반군과의 내전으로 5만명의 사망자와 수십만명에 달하는 전쟁난민을 냈다. 그래서 국토는 온통 전쟁터가 되었고 경제는 피폐화하여 국민들은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결국 부푼 「혁명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5일 실시된 대통령선거는 산디니스타 좌익정권의 오르테가대통령으로 하여금 야당연합후 보인 비올레타 차모로여사에게 무릎을 꿇게 했다.
중미에서는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될 차모로여사를 외신은 「니카라과의 코라손」이라고 부르고 있다. 라 프렌사지의 발행인이었으며 혁명의 영웅이었던 그녀의 남편 요아킴 차모로는 지난 78년 어느날 아침 치과병원에 가다가 반대파의 저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네 자녀를 키우며 가정을 지키던 평범한 주부 차모로여사는 어느날 갑자기 야당의 투사가 되었다. 필리핀의 아키노여사가 그랬던 것처럼….
차모로여사는 자신의 저택에 남편이 피살당시 입었던 피묻은 셔츠와 총탄으로 벌집이 된 승용차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그같은 여인의 한과 집념이 오늘의 승리를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차모로여사의 정치적 장래가 꼭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무런 정치적 경험이 없는 그녀가 10여년의 내전을 종식시키고 국가경제를 다시 재건할 수 있겠느냐 하는 우려와 함께 그녀의 가족들에게 보내는 국민의 시선도 착잡하다.
그녀의 큰아들은 여당기관지의 편집책임자인 데 반해 작은 아들은 콘트라반군의 지도자이며,또 큰딸은 산디니스타정권의 외교관인데 막내딸은 야당지 라 프렌사의 간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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