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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왕자는 왕위 계승 서열 3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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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왕실에선 일왕의 둘째 아들 후미히토(文仁)가 태어난 1965년 이후 일왕의 형제와 손자대를 포함해 9명의 아이가 태어났으나 줄줄이 딸이었다. 남성과 부계에만 즉위를 인정하는 일 왕실로선 계통을 유지하기 힘든 비상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여성과 여계의 왕 즉위를 인정하는 내용의 왕실전범 개정에 적극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러던 참에 둘째 며느리 기코의 남아 출산은 일 왕실에 있어선 긴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다. 여왕 제도 인정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대다수 일본 국민 들은 왕실의 대가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일왕이라는 존재 자체가 1억3000만 명에 달하는 일본 국민을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새 남아는 왕위 계승 서열 3위= 다음주 초 새 이름을 얻게 되는 남아는 태어나면서 바로 왕위 서열 3위가 됐다. 왕세자인 나루히토(德仁.46) 왕세자, 부친인 후미히토(文仁.41)에 이어서다. 연령 구조를 생각하면 큰 이변이 없는 한 현 왕세자가 일왕으로 재임한 이후 그 후를 잇는 일왕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일 왕실과 국민 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현재 헌법상 일왕은 대신들로 구성된 내각의 임명장을 수여하거나 국빈 방문시 접견 등의 의례적인 행사 이외에는 현실 정치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일 국민 들로부터는 절대적인 존경심을 받는다. 국가의 권위를 지키고 결속을 이루는 데 있어 그 상징적인 존재로서의 역할은 지대하다.

에도(江戶)막부 타도 이후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기 전까지 일왕은 최고 권력자 겸 '신'이었다. 일 제국주의의 수장 역할이면서 신성 불가침의 신으로 떠받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패전 이후 46년 일왕 스스로 '인간선언'을 함으로써 일왕이란 존재는 국민들에게 보다 가깝고 친근하게 다가갔다. 즉 권한은 없지만 보다 일본이란 나라의 상징, 일본 국민의 통합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는 일 왕실이 전국 단위의 국내 행사와 재해지역 방문, 장애인 단체 운영 등 몸을 낮춰 그늘 진 곳을 찾는 데 주력한 결실이라는 지적도 있다.

◇'여성 및 여계 일왕' 인정하는 왕실전범 개정 논의 시들해지나= 지난해부터 일 정부는 왕실전범 개정을 논의하기 위한 전문가 회의를 열어 '여성 및 여계 일왕'을 인정하는 전범 개정안을 마련한 상태다. 이는 사실상 왕세자와 마사코(雅子.42)왕세자빈 사이의 딸 아이코(愛子.4) 공주의 왕위계승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올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던 이 왕실전범 개정안은 올 2월 기코의 임신 소식이 전해지면서 보류된 상태다. 그러나 6일 남아가 출산함에 따라 왕실 전범 개정안은 급격히 모습을 감추는 분위기다. "어떻게 얻은 남아인데, 누가 왕실의 경사에 찬물 끼얹으려 하느냐"는 목소리가 벌써 부터 나온다.

차기 총리가 확실시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도 원래 왕실전범 개정에 신중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날 "왕위 계승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므로 국민 여론을 잘 듣고 냉정하고도 신중하게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당분간 개정 논의를 유보할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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