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앞으로 3년/전육 정치부장(데스크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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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태우 대통령이 25일 취임 두돌을 맞는다. 그가 이끈 지난 2년은 우리에게 엄청난 변혁을 가져다 준 시기였다. 그같은 변혁을 정부쪽에선 선진국가를 예비하는 의도된 민주개혁이었다고 설명하고 있고 국민들은 대체로 민주화로 가는 과정의 커다란 진통이었으며 아직도 그 결과를 낙관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
대변혁을 보는 이같은 시각의 차이는 민주화와 경제발전ㆍ사회안정을 평가하는 관점에 따라 달리 나타날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을 위기로 보느냐,아니면 혼란이 수습되어 새로운 도약을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으로 보느냐가 아직도 헷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변화를 불안해 하거나 장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지난 2년간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 정치행태를 개선하고 다방면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고,그런 변혁이 노대통령이 아니었으면 그토록 빠른 속도로 이루이지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은 수긍하는 경향이다.
어찌됐건 사법부의 독립이 고양되고 언론의 자유가 신장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여전히 다른 평가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탄압이나 인권문제도 현저히 완화됐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또 힘든 과정을 겪고 5공청산을 매듭지은 것이나 야당과의 대타협,3당합당을 통해 대결정치ㆍ지역주의를 극복하려 노력한 것도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는 대목이다.
북방외교는 누가 뭐라해도 노대통령 또는 노대통령시대의 시의 적절한 정책결정이자 업적으로 평가될만 하며,통일문제에 대한 논의와 인식을 크게 바꾸어 놓은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러함에도 많은 국민들이 노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에 충분한 기대를 걸지 못하고 있는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지난 2년간 그가 수행한 국정이 「민주화」란 슬로건에 편중된데다 그것마저 강한 집념과 의지에 의해서라기 보다 어쩔수 없이 떼밀려 온듯한 측면이 강하고 반대로 국민의 생활과 직결된 경제ㆍ민생ㆍ치안분야에서는 책임감있는 정책결정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된다.
달리 말해 민주화 빼고 다른 정책에 있어서는 그의 특징과 철학이 국민들에게 어필하지 못했을뿐 아니라 왕왕 일관성과 원칙이 결여되어 혼란을 가중시킨 일면까지 있는것이 아니냐는 물음이다.
사실 노대통령은 그동안 경제나 민생치안,법과 절서에 관해 무수히 많은 말을 해왔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그 숱한 말들은 참모들이 써주는 백화점식 언급이 대부분이어서인지 신념이나 철학을 담아 구체적인 정책으로 관철하려는 의지가 실감나게 전달되지 못했다.
예컨대 작년 7,8월까지만 해도 8∼9%의 성장이 가능하며 경제가 조정국면이라고 했다가 두달후 갑자기 경제가 위기라고 한게 바로 그런것이다. 그런데도 그같은 잘못된 전망을 제공한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대통령이 경제전문가가 아니어서 직접 챙기기 어렵다면 일할 팀이라도 단단히 만들어 힘을 모아주는 것이 국가경영의 요체가 아닌가 하는 걱정을 많이 듣게 된다. 전세값이 뛰고 온통 난리인데 국세청의 세무조사 외에는 어떤 부처도 진지한 대책을 내놓거나 고민하는 것 같지 않고 개각설로 경제부처가 2,3개월 일손을 놓고 있는 사태가 발생해도 대책이 강구되는 기색이 안보인다.
좋은 사람 발탁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잘못하는 사람을 때를 놓치지 않고 바꾸는 것도 용병이다. 5공처리과정에서 대세를 휘어잡았고 정치적 사안을 해결하는데는 비정하리만치 자기살을 베는 결단을 내렸던 노대통령이 이제는 정책 결정에도 그런 면을 보여야 할것 아니냐는 얘기가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보통 사람이 갖기 어려운 타고난 「인내」로 지난 2년간 주도한 민주화가 제대로 꽃피기 위해선 이제 노대통령이 앞장서 민주화의 진통을 차단하는 결단력을 보여야 할때다. 한때 비판을 받더라도 챙길것은 챙기고 자를것은 자르는 자세가 아니고는 남은 3년이 지난 2년보다 평탄하리란 보장은 없다.
또 노대통령이 퇴임후를 대비,부담될 일을 피하고 손쉬운 사후 보장책을 찾을지 모른다는 정가의 추측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민자당 창당배경과 관련한 밀약설과 내부경쟁의 불공정성에 대한 의심이 여권내에 만연해 있음이 사실이다. 전임 전두환 대통령이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원성을 샀다면 노대통령은 과거의 자기편에 앙금을 많이 남긴 편이다.
5공 혐오와 민주화란 대세에 눌려 고개숙이고 있지만 속으로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않고 정부ㆍ여당내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밖에」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많다. 이런 사람들을 안고 가는 정치는 속은 타는데 겉은 조용한 휴화산과 같을수 있다.
노대통령의 재임중 후광이 정당한 경쟁윤리를 뛰어넘어 민자당내의 어느 한쪽으로 집중될 때 여러 사람이 소외감을 느낄것이고 이것이 자칫 노대통령의 집권 후반기에 예기치 않은 풍랑을 몰고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노대통령의 통치 5년이 「민주화」란 스타일만 남기고 국부와 민생증진에 별다른 결실이 없었다는 소리가 안나오자면 정말 지금부터 할일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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