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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정부 요구에 빚 5조 떠안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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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공기업의 최대 문제점으로 비효율과 부실이 꼽힌다. 공기업 부실의 일차 책임은 해당 기업에 있다. 그러나 공기업 측도 할 말은 있다. 정부가 공기업의 책임경영을 보장하지 않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정부 간섭 때문이다.

◆ 공문 하나로 바뀌는 경영목표=공기업의 경영목표는 정부 내 소관 부처와 협의한 뒤 이사회에서 결정된다. 이렇게 결정된 경영목표가 정부 부처의 공문 하나로 뒤바뀐 적이 있다. 그것도 정부 부처가 당초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주택공사의 공공임대주택 건설 목표가 그 사례다. 주공은 지난해 공공임대주택 7만 호를 짓기로 했다. 하지만 5개월 뒤 건교부가 7만5000호로 늘려줄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건교부는 당초 주공과 지자체를 합쳐 공공임대주택을 10만 호 공급하기로 목표를 세웠다가 지자체 쪽에서 3만 호를 채우는 데 난색을 표하자 주공에 5000호를 더 짓도록 한 것이다. 당시 이사들은 "건교부 공문 하나 때문에 예산부터 모든 것을 새로 짜야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주공 부사장까지 "분명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지만 정부 요구를 거절할 힘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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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간섭은 작은 데까지 미친다. 2006년 토지공사의 예산안 중 홍보비로 전년(45억원)보다 30% 정도 늘어난 돈(약 60억원)이 책정됐다. 국정홍보처 등이 국가 홍보 비중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30억원 정도 증액을 요청한 게 반영됐다고 김재현 사장은 설명했다. 그는 "현재 나가고 있는 영상광고 중에도 정부 요구에 의한 것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관광공사 비상임이사였던 제프리 존스는 이사회에서 "우리가 결정하는 거지만 (실제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그냥 따라가야 한다는, 굉장한 압력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부적절한 인사정책도 공기업 부실의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낙하산 인사 투입으로 공기업의 의욕을 떨어뜨리는가 하면, 오락가락한 인력 정책으로 방만경영의 뿌리를 제공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정부는 공기업 구조조정 차원에서 공기업 정원을 일률적으로 20%씩 줄였다. 당시 기획예산처에서 구조조정작업을 맡았던 박개성 전 정부개혁실 팀장은 "공기업 노조 간부들이 '회사의 비효율은 인정하겠지만 그건 무능력한 경영진을 낙하산으로 보낸 정부 책임인데 왜 구조조정은 우리만 당해야 하느냐'고 항변할 때 할 말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청년실업을 해소한다는 이유로 공기업에 채용을 늘리도록 했다. 이번에는 "공기업 인원이 업무에 비해 비대해졌다"(김준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설마 파산이야 하겠느냐"=정부는 2004년 11월 이른바 '한국형 뉴딜'이란 종합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엔 도로공사가 6년간 5조원을 투자해 고속도로를 만드는 내용이 포함됐다. 도공은 발칵 뒤집혔다. 2005년 9월 도공 이사회에서 검찰 출신인 김학재 이사는 "(부채 상환 계획도 없이) 5조원의 빚을 지다 나중에 채권은행이 일시에 갚으라고 하면 파산한다"며 "정부 요청이라고 수조원의 빚을 지겠다고 하면 법적으로 사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부실 기업들은 전부 사기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손학래 사장은 "솔직히 5조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조사가 미흡한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설마 파산이야 하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도공은 정부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고속도로 통행료 인상을 요구해 지난 2월 고속도로 통행료가 4.9% 올랐다.

관광공사는 5년 전 금강산 관광사업을 위해 남북협력기금 900억원을 빌렸다가 현재 이자조차 갚지 못하고 있다. 토공이나 주공 같은 대형 공기업들의 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부가 진 빚(4조5000억원)을 안고 출범한 철도공사는 정부가 회사 부채를 인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공성이 강조되는 공기업의 특성상 공기업의 재무구조를 사기업과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기업 부채가 일시적 현금흐름 때문이 아니라 도공처럼 구조적 차원의 문제라면 정부 부채나 다름없으며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서울대 김준기 교수는 걱정했다.

탐사기획 부문 = 강민석.김은하.강승민 기자

*** 바로잡습니다

9월 6일자 5면'관광공사가 금강산 관광 사업을 위해 남북기금에서 돈을 빌렸다가 이자조차 갚지 못한다'는 대목과 관련, 관광공사에선 "금강산 관광 사업 초기에는 수익 창출이 어려워 육로관광 개시(2003년 9월) 후 2년간은 이자 납부 유예를 받았으며 지난해부터 온천장 등의 임대 수입으로 30억원, 올해는 9억원의 이자를 갚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관광공사 남북관광사업단 실무자는 취재팀에 "금강산 관광 사업에서 수익이 나지 않아 이자도 못 갚는다"고 답변했고, 이사회 회의록에도 그렇게 표현돼 있었으나 관광공사는 이를 "실무자의 착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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