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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이혼「대리상담 」자녀가 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부모들의 이혼문제를 상담하러 오는 자녀들이 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 상담소의 경우 지난 1월 한달 부모문제로 자녀들이 대리상담을 하러온 경우가 14건. 이들은 부모의 배우자 이외의 이성관계를 비롯해 아버지가 첩을 두어 낳은 자식에 대한 상속·호적·친자 확인문제 등을 상담하고있다.
또 이들 자녀들은 부모가 이혼까지는 하지 않은 상태이나 부모사이가 너무 나빠 차라리 『이혼하는 것이 낫겠다』는 견해까지 보이고 있다.
한국가정법률 상담소 차명희 부소장은 『부모문제를 대리 상담하러 오는 자녀는 대부분 출가한 딸이지만 중·고교생들도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부모의 이혼문제를 자녀들이 거론하고 나서는 것은 최근 세대에 따라 가족윤리관과 결혼관이 크게 달라진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부모들은 대개『출가한 여자는 시집귀신이 돼야하고, 남자는 조강지처를 버리면 천벌을 받는다』는 등의 윤리의식을 갖고 있는 데다 호적상의 이혼이 자식의 장래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으로「원수처럼 지내도 한지붕안의 부부」를 고수해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자녀들은 부모들이 매일 싸움을 하는데 오히려 불안을 더 크게 느끼고 있으며 「자식 때문에 산다」는데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차라리 이혼 하는게 낫다」는 견해를 보인다고 상담소 측은 밝혔다.
여기에 부모들의 경우「지금까지 당하고만 살아 왔는데, 이혼해주고 난 뒤 상대방이 편안하게 사는꼴을 억울해 못 본다」는 병리적 결혼관이 더해 져「결혼이란 서로를 존중하며 인간답게 사는것」이란 자녀들의 가치관과 크게 어긋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리 상담자(자녀 )가운데는『때리는 아버지나 맞고 대드는 어머니나 서로가 상대방을 그런 식으로 길들여온 탓이 크다』면서『삶의 방식을 바꿀 수 없으니 이혼 할 수 밖에 없다』는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노인 재혼도 자녀들의 대리상담이 늘어나는 원인중 하나. 노인과 재혼한 어머니가 몇 년 동안 수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남편의 임종이 다가오면 전처 소생 자녀들이 아버지를 모셔 가는 바람에 어머니의 노후가 문제돼 상담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런 경우 호적신고도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법률적 보호를 받기에도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이 밖에 어머니가 가출해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경우 호적상에만 부부로 돼있는 부모의 이혼문제를 자녀들이 대리 상담하러 오기도 한다.
차 부소장은『결혼관에 대한 차이로 자녀들이 부모의 이혼문제를 상담해온 경우 부모에게 이를 알려주면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 들일줄 몰랐다」면서 부부 모두 태도를 바꾸어 문제가 해결되는 일도 가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자녀들의 이기주의다. 부모에 대한 사랑보다도 우선 시끄러운 집안이 싫고, 싸움을 그치게 하기 위해 자식이 방패막이가 돼야하는 현실이 지겨우며, 새삼스럽게 재혼까지 했던 나이든 어머니를 자신이 모셔야하는 것이 싫은것 등등 「자신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을 수 있기 때문.
차 부소장은『세대의 변화에 따라 서로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나 자식의 이기주의에 의해 부모들의 이혼이 종용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공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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