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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상황 유럽과 다르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는 감군ㆍ분담금 요구에 신축성을
한미 국방장관회담을 위해 내한한 체니 미국방장관이 「주한미군은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는데 필요한 기간동안,그리고 한미 양국 정부와 국민이 원하는 한 주둔할 것」이라고 천명한 것은 주한미군의 장래문제에 관해 미국 정부가 공식으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주목하고자 한다.
그러나 주한 미군문제는 모든 해외주둔 미군의 장래와 함께 감축을 요구하는 의회쪽 입김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행정부쪽 기준을 그대로 미래를 계획하는 참고자료로 삼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가 주한미군의 장래에 관해서는 행정부쪽 보다는 의회쪽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90년대 중반까지는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는 주한미군의 상당한 감축에 대비해야 될 것이다.
격변하는 국ㆍ내외 정세를 감안할 때 매우 중요한 시기에 열리는 이번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토의될 미군감축,작전권 이양,방위비 분담문제,용산기지 이전 등은 모두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 것으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사안들이다.
공산권의 개혁ㆍ개방물결에 힘입어 미소 정상이 몰타회담에서 탈냉전을 선언하고 미소가 유럽 주둔군을 각각 19만5천명으로 감축하기로 합의하는등 동서진영간의 군축분위기는 점차 고조돼 가고 있다. 이는 평화공존을 향한 긍정적인 변화로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한미군 철수문제만은 한반도의 특수사정을 고려해 다른 지역과는 개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세계적인 변혁기에도 요지부동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북한의 존재 때문이다.
북한은 아직도 대남혁명전략이라는 기본노선을 고집하고 있을 뿐더러 전투장비와 전투병력의 대부분을 휴전선 가까이 바짝 전진배치해 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억지력과 유사시 인계철선의 역할을 해오던 미군을 자국 이해만 생각해서 일방적으로 성급히 감축 또는 철수를 결정하는 것은 또다시 북한을 오판하게 만들 위험성이 있고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체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군이 이땅에 영원히 주둔하는 것을 원치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고 본다.
다만 미군철수는 남북대화의 진척상황과 철군으로 야기될 전력손실을 대체할 수 있는 전력확보문제와 상관관계를 이루면서 이루어져야 하며 갑자기 한반도에 힘의 공백상태를 만들어 북한이나 주변국들을 유혹해서는 안될 일이다.
방위비 분담문제도 결코 가볍게 흥정할 문제가 아니다.
미행정부가 계속되는 재정적자로 의회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한국도 지난 4년간의 무역흑자가 끝나고 올해부터는 적자가 예상되는 등 과거와 다른 난국을 맞고 있다.
게다가 1인당 GNP가 일본의 5분의1에 불과한 한국은 일본 자위대보다 3배나 많은 병력을 유지하는 특수한 상황이다.
우리는 이와같은 특수성이 이번 회담에서 충분히 반영되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이제는 현실 문제로 다가선 자주국방체제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와 병행해 남북간 긴장완화의 노력이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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