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출판사 첫 책] 다섯 수레 '사람아 아, 사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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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성 작가 다이 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는 중국 지식인들이 문화대혁명이라는 중국 현대사의 격랑을 헤쳐 나가는 다양한 모습을 진솔하게 그린 작품이어서 국내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사랑을 받을 만했다.

11명의 등장 인물이 겪는 인간적인 갈등과 슬픈 사랑이 너무나 절절하다.

이 소설이 1988년에 다섯 수레를 연 김태진(64.사진) 사장에게 떨어진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이 책은 경제적으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 국내 독자들이 문화대혁명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을 추천한 사람은 당시 일본 도쿄여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지명관씨였다.

망명객이나 다름 없는 처지였던 지씨가 일본 이와나미 문고의 중국문학 관련 책을 읽다가 다이 호우잉이라는 굵직한 작가를 캐낸 것이다.

그때는 중국과 교류조차 없는 데다 이 책이 금서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원서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 교수가 일본의 대학 도서관에서 원서를 빌려다가 손수 복사를 해서 김사장에게 보내 주었다.

번역자가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인 것도 재미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징역 생활을 20년 가량 하는데, 신교수도 소위 말하는 통역당 사건으로 20년20일을 복역하고 막 세상에 나온 때였다.

어느 날 출판사에 들른 신교수에게 김사장이 이 책을 건네며 검토를 부탁했다. 혁명 투사인 남자 주인공이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면서도 국가에 대한 애정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는다는 내용에 끌려 신교수가 번역을 맡기로 했다. 그때가 1989년 가을이었다.

이 작품이 독자들을 찾기까지는 그리고도 2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 그 기간에 다섯수레에서 어린이 책이 스무 권 가까이 나왔으니 김사장이 첫 기획에 들인 공은 엄청난 것이었다.

'사람아 아, 사람아!'의 줄거리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남편과 이혼하고도 애인과는 결국 사랑을 맺지 못하는 내용이 그렇다. 다이 호우잉은 1980년부터 상하이 대학에서 문예이론을 가르치다가 96년에 조카딸의 애인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는다.

드물게 선보인 중국 현대 문학이어서 그런지 '사람아 아, 사람아!'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휴머니즘 소설이어서 독자층도 다양했다.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는 필독서로 꼽혔다.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글을 써내려가는 독특한 기법은 큐비즘문학으로 불리며 작가 지망생들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식인들이 지켜야할 덕목이나 아름다운 사랑은 언제나 호소력을 지니는 소재인 덕에 이 책은 지금도 1년에 5천부 이상 팔린다.

초판 판형 그대로 57쇄를 찍으며 지금까지 45만부 판매를 기록했다. 김사장은 내년 봄쯤 영상세대에 맞게 디자인과 활자를 바꿔 이 작품을 다시 한번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올릴 계획이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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