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교과서는 사회주의 시각에서 농민 봉기에 의한 왕조 교체, 20세기 초반의 제국주의 침탈과 이에 대한 항전, 공산혁명과 사회주의 중국 건국 등을 비중 있게 다뤘다.
하지만 새 교과서는 문화사와 경제.과학.기술발전사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사에선 사회주의혁명 부분을 대폭 줄였으며 세계사 부문에서는 서구의 산업혁명과 정보혁명을 많이 취급했다. 역사를 보는 시각을 확 바꿔버린 것이다. 민족과 이데올로기가 차지하던 상석을 경제와 사회.문화에 넘겨준 획기적인 변화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교과서 개정은 상하이시에서만 이뤄졌고 수도인 베이징(北京)을 비롯한 다른 대도시에선 아직 조짐이 없다.
◆ 마오쩌둥도 밀렸다=이달부터 사용되는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확 바꾼 주인공은 상하이시다. 시 교육 당국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내놓은 새 교과서는 특히 사회주의 건국 영웅이자 현대 중국 정치를 주름잡았던 마오쩌둥(毛澤東)에 관한 기술부터 대폭 줄였다. 한 단락에서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한 인물'로만 간단하게 언급했다.
1950년대 이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마르크시즘도 거의 퇴출당했다. 중국 사회주의를 '영광스러운 미래를 가져올 주역'으로 언급하긴 했지만 52개 단원 중 하나로 축소했다.
과거 역사교과서를 관통했던 민족주의도 많이 줄었다. 예를 들면 몽골족의 원나라에 대항한 한족의 영웅 문천상(文天祥)에 관한 기술이 새 교과서에선 아예 빠졌다. 중국 통일을 이룬 진시황에 관한 기술도 확 줄였다.
◆ 과거보다는 미래에 비중=개정작업에 참가한 관계자는 "과거 역사 기술은 이데올로기와 민족 정체성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번에는 그 대목을 줄인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족 정체성과 혁명사 중심으로 차세대를 교육할 수는 없다"며 "세계화 속도가 빨라진 요즘의 국제정세를 감안해 학생들로 하여금 미래를 준비하도록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교수는 "몇몇 영웅이 아닌 경제와 기술 등 생활의 변화가 역사 책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의 전체적 구조를 강조한 아날학파 페르낭 브로델의 관점을 많이 수용했다"며 "문화와 종교, 경제와 사회 관습 부분에 관한 기술을 대폭 늘렸다"고 소개했다.
◆ 정치적 배경설도=개정작업이 현 지도부와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면서 지속적인 개방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상하이방(上海幇)의 본산인 상하이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다음달 공산당 당 대회를 앞두고 최근 들어 현 지도부와 상하이방의 갈등설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현 지도부에 대한 상하이방의 공세가 역사교과서를 통해 표현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 4세대 지도자 후진타오(胡錦濤)는 최근 공산혁명 회고 행사를 잇따라 열고, 분배를 강조하는 조화사회론 등 이념성을 강조하며 실용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던 상하이방과의 차별화를 추진하고 있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