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문화cafe] 할리우드가 만든 시월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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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키아누 리브스,샌드라 불럭,딜런 월시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20자평:현대 사회에도 고전적인 사랑과 낭만은 존재한다

영화 '레이크 하우스'(8월 31일 개봉)는 한국 영화를 리메이크한 첫 번째 할리우드 영화다. 원작은 이현승 감독, 이정재.전지현 주연의 '시월애'(2000년). 이런 사실은 한국 관객들에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우선 좋은 점이라면 한국 영화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구나 하는 뿌듯함이다. 영화의 본고장 할리우드가 한국 영화의 리메이크 권리를 사들인 뒤 배경과 등장인물을 살짝 바꿔 다시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6월에 개봉해 흥행성적도 괜찮았다고 한다.

반면 이미 영화의 줄거리를 알고 있다는 것은 나쁜 점으로 꼽을 수 있다. 결말을 다 알고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미 없는 일도 없을 터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원작과 무엇이 달라졌나 비교하는 수고를 하기보다 새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하길 권한다. 어차피 원작과 리메이크 사이에는 6년이란 시차가 있어 상당수 관객들은 기억이 가물가물할 것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알레한드로 아그레스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서인지 여느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정서도 느껴진다.

영화는 케이트(샌드라 불럭)가 호숫가의 그림 같은 집에서 이사를 나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케이트는 짐을 챙겨 떠나기 직전 짧은 편지를 써 우편함에 남긴다. 그리고 새로 이사온 알렉스(키아누 리브스)가 그 편지를 본다. 처음에 알렉스는 도저히 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호숫가 집에는 세입자가 살았던 적이 없고, 편지에 적힌 사건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차례 편지가 오간 뒤에야 둘은 자신들이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음을 발견한다. 2006년의 케이트가 2년이란 시차를 뛰어넘어 2004년의 알렉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두 사람은 차츰 호감을 느끼게 되고, 호감은 사랑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둘은 각자의 시간대에서 상대방의 모습을 찾으려 애쓴다. 알렉스는 실제로 케이트를 찾아가지만 당연하게도 이때의 케이트는 알렉스가 누군지 전혀 모른다. 2006년의 케이트도 알렉스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좀처럼 만날 수 없다.시간을 뛰어넘은 편지가 사랑의 매개체가 된다는 점은 휴대전화나 인터넷 채팅이 넘쳐나는 현대에서 왠지 모를 신비감을 자아낸다. 그래서 둘의 사랑은 금방 끓었다 식는 인스턴트식을 거부한다. 대신 계절의 변화처럼 알게 모르게 서서히 사랑이 이뤄지는 고전적 낭만이 있다. 아직 본격적인 가을을 얘기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영화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받아주세요'하는 노래 '가을편지'를 절로 떠오르게 한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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