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그 결승전서 명판결 김건태 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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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8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006 남자 배구 월드리그 브라질-프랑스의 결승전. 세트스코어 2-2의 팽팽한 대결이 이어졌다. 최종 5세트도 엎치락뒤치락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브라질이 13-12로 앞선 상태에서 프랑스 선수가 강스파이크를 날렸다. 공은 브라질 블로커의 손을 맞고 옆줄 밖으로 떨어졌다. 언뜻 브라질의 터치아웃으로 보였으나 주심은 판정을 내리지 않고 부심과 선심을 불러 모았다. 양 벤치에서는 모두 일어났고 2만여 관중은 긴장 속에 주심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심과 선심은 브라질의 터치아웃이라고 했으나 주심은 공이 다시 프랑스 선수의 몸에 맞았다며 브라질의 득점을 선언했다. 관중석은 술렁였고, 프랑스 벤치는 망연자실했다. 잠시 후 스파이크했던 프랑스 선수가 손을 들어 '양심 선언'을 했다. 공이 자신의 등에 맞았다는 시늉까지 해보였다. 순간 관중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주심에게 보내는 신뢰의 표시였다.

그날 오후 심판 미팅에서 국제배구연맹(FIVB)의 크라우스 심판위원장은 이 장면을 거론하며 "월드리그 최고의 명판결"이라고 극찬했다.

그 주심이 바로 한국인 김건태(54.한국배구연맹 심판부장) 심판이다. 1990년 국제심판으로 데뷔한 김씨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3~4위전 주심, 지난해 월드리그 결승전 부심에 이어 올해 결승전 주심 자리에 섰다. 축구로 치면 월드컵 결승전 주심을 본 것이다.

척박한 한국 배구 풍토에서 자라난 그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포청천'으로 우뚝 서게 됐을까.

▶90%의 눈과 10%의 감각

"90%는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다 볼 수는 없지요. 나머지 10%는 오감을 동원합니다."

이 10%의 판정을 얼마나 정확히 내리느냐가 명판관의 잣대라고 말한다. 해당 선수의 얼굴 표정과 볼이 터치될 때 나는 소리, 벤치의 분위기 등을 종합한다. 결승전 5세트 당시 상황이 그랬다고 한다. "그렇게 종합적으로 내린 판정은 거의 실수가 없죠."

▶팀 관계자와는 밥도 먹지 않는다

김씨는 절제된 사생활로 유명하다. 이해관계에 얽힐 수 있는 팀 관계자와는 사적으로 일절 만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쌀쌀맞은 사람'이란 소리도 듣지만 개의치 않는다.

"팀 관계자와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도 안 된다)'이 제 신조입니다. 한마디로 '인정머리 없다'는 소리를 들어야 정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내 대회에서 가장 민감한 경기인 현대캐피탈-삼성화재 전에는 어김없이 그가 주심을 본다. '편파 판정'이라는 얘기는 어디서도 나오지 않는다.

▶끊임없이 공부한다.

김 심판은 공부하는 심판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빠짐없이 하루 1~2시간씩 영어 공부를 한다. 말이 통하지 않고서는 국제무대에서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국제대회에서 보통 심판 미팅은 2~3시간씩 영어로 이뤄진다. 영어를 못하면 회의 참가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국에 국제심판은 많아도 주요 국제대회에서 활약하는 FIVB 심판은 김건태 심판이 유일하다.

신동재 기자

월드리그 브라질-프랑스의 결승전. 멀리 보이는 사람이 김건태 주심. [한국배구연맹 제공]

김건태 심판은
잦은 부상으로 선수생활 접고
20년간 초일류 심판의 꿈 다져

김건태 심판은 세계에서 22명뿐인 국제배구연맹(FIVB) 국제심판이다.

서울 리라공고 2학년 때 큰 키 때문에 배구를 시작했고 명지대를 거쳐 충주비료에서 선수로 뛰었다. 그러나 배구 입문 자체가 늦은 데다 잦은 부상으로 선수로서는 꽃을 피우지 못했다. 1985년 원로 국제심판이던 김순길씨의 권유로 심판의 길에 들어선 김씨는 "선수로 못 이룬 세계 초일류의 꿈을 심판으로 이루겠다"고 다짐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수백 편의 경기 비디오를 틀어놓고 판정을 연구했고, 외국어에 능통하지 않고서는 국제무대에 서기 어렵다는 생각에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지금도 영어 공부는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코트의 판관'으로 권위를 갖기 위해 항상 짙은 색 양복에 넥타이를 갖춰 맸으며, 체력 강화를 위해 술.담배를 멀리하고 조깅과 등산을 생활화했다. 자신감과 객관성에 근거한 확실한 판결로 '코트의 포청천'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주요 경기에는 어김없이 그가 심판을 맡았다. 그리고 세계에서 최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52년 12월 경기도 장호원 출생. 1m90cm.88kg의 체격에 좌우명은 '원칙에 충실하자'다. 부인 박경실(49)씨와 2남(25세, 23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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