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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부가 나서서 법치주의 흔드는 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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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찰이 국경일에 주행신고를 한 폭주족에 대해 도심 주행을 허용키로 했다고 한다. 심야에 자유로나 올림픽대로 등의 일부 차로를 오토바이 전용구간으로 정해 폭주족의 집단주행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단속만으론 한계가 있어 폭주족을 양성화하면서 관리할 방침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이는 정부가 나서서 스스로 법치주의를 깨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이 폭주족에게 백기를 들었다고 표현해도 틀린 얘기가 아니다. 매춘 단속이 힘드니 국경일에 신고하면 일정 지역에서 매춘을 허용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아무리 권위 없는 정부라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

심야에 자동차를 운전하다 폭주족에 둘러싸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어떤 집단인지를 잘 안다. 10대가 대부분인 이들은 괴성을 지르고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아무나 붙잡고 행패를 부린다. 중앙선 침범이나 과속, 신호 위반은 기본이다. 지나가는 차를 아무런 이유 없이 발로 차거나 공격해 시민들을 공포에 빠뜨리기도 한다. 이들이 지나가는 심야 도심은 무법천지에 공포의 도가니가 된다. 경찰의 단속은 식은 죽 먹듯 따돌리며 경찰을 조롱한다. 지난달에는 무면허 운전혐의로 연행된 동료를 구한다며 경찰서를 찾아가 집단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한마디로 공권력쯤은 우습게 아는 준범죄집단이다.

이런 폭주족을 적극 단속해야 할 경찰이 도리어 폭주족을 허용하겠다니 말이 되는가. 실효성도 의문이다. 경찰의 단속에 맞서가며 불법 질주를 벌이는 데서 쾌감을 찾는 이들이 과연 경찰에 주행신고를 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경찰은 직무유기에 가까운 이 같은 방침을 당장 철회하라. 대신 폭주족에 대한 단속을 더욱 강화하기 바란다. 인원이 모자라면 인원을 늘리고, 장비가 모자라면 장비를 보강하라. 도로교통법도 개정해 이들에 대한 처벌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선량한 시민을 위협하며 공권력을 우습게 아는 폭주족이 심야 도심을 활개치도록 방치하고 조장한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법치국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