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데아 신화(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생명경시풍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최근 며칠사이만 하더라도 대학생이 청혼을 거절하는 여대생과 강제 분신자살을 하는가 하면 30대의 주부가 신병을 비관,어린 남매와 연탄불을 피워놓고 동반자살했다.
그런가하면 또 국민학교 6년생이 아버지로부터 『공부좀 하라』는 꾸중을 듣고 목을 매었고 연합고사에 떨어진 중학생 6명이 집단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안그래도 끔찍한 살인사건이 연일 신문지면을 메우고 있는 터에 이같은 자살사건까지 연거푸 일어나는 것은 국민의 정신건강에 병이 나도 크게 났다는 증거다.
이와 같은 자살사건에서 특히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동반자살이다. 우리 사회의 동반자살 유형은 부모와 자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자살은 말이 동반자살이지 엄격히 따지면 부모의 자식살해라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부모중에서도 아버지쪽보다 어머니쪽이 자식살해의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그 원형을 그리스신화에서 나오는 메데아에서 찾는다. 메데아는 그녀의 남편 이아손이 자기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로 가자 그녀의 자식들을 모두 살해한다.
이 메데아신화를 유리피데스는 『메데이아』라는 비극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같은 「자식살해 모」에 대해 벤더라는 미국의 여류심리학자는 재미있는 분석을 했다. 어머니의 자식살해란 자식을 증오해서가 아니라 자기와 그 아이를 동일시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자살행위인데 대개 자기만 자살해 버린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지만 차차 자기와 아이를 함께 죽이는 이른바 동반자살로 발전하고 종국에 가서는 자식만 죽이는 것으로 끝나는 엉뚱한 결과를 빚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족의 동반자살은 서양보다 동양이 많다. 그것은 문화권 차이 때문인데 동양문화권에서는 부모와 자식간의 일체감이 서양보다 훨씬 강하다. 따라서 자기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가족,특히 어린 자녀들을 내버려두고 혼자 죽는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일종의 배신행위로 생각한다.
인간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고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할줄 아는 합리적인 인간관이 우리 가정에 충만하게 되면 자살은 있을지언정 동반자살은 사라질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