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인사이드피치] 258. 찬호의 열정 '몸져누워도 마음은 야구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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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보. 세. 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병색이 완연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박찬호가 전화를 받았다. 소장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이틀째 되는 27일이었다. 집에서 요양 중인 그는 안심시키려는 듯 불편한 점이 없다는 얘기부터 했다. 그는 "오히려 잘 됐습니다. 이제 회복만 되면 재발할까봐 걱정하지 않고 던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지금 뭐가 가장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는 느리지만 단호한 어조로 "몸을 만들어야죠"라고 했다. 체중도 많이 줄었고 근력도 떨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어떡하든 몸을 만들어 시즌이 끝나기 전에 던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잘하면 시즌 끝나기 전에 한두 경기는 던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게 안 되면 플레이오프에 나갈 경우에 대비해서라도 몸을 만들겠다"라며 강한 집착을 보였다. 거기에 보태서 "올 시즌이 끝나면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의 올스타전이 있는데 선발되면 거기도 갈 생각"이라고 했다. 아픈 목소리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 순간, '야구 욕심이 정말 많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난 1년간 그가 지나온 길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지난해 연말 한국에 돌아와 김성근 롯데 코치와 운동하던 모습, 하와이-한국-일본으로 이어졌던 결혼식, 다시 미국에 돌아가 잠깐 스프링캠프에 참가한 뒤 일본으로 날아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참가하고, 일본-미국에서 한 달 넘게 이어진 WBC 대회에서 투수진의 리더로 애쓰던 모습이 되살아났다. WBC가 끝나고 곧바로 시작된 시즌에서 처음에는 선발진에 끼지 못하고 불펜에서 출발했지만 한 달 만에 선발진에 합류, 소장 출혈을 발견하기 전까지 팀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던졌던 그의 기록도 되새겨졌다. 그는 정말 숨가쁘게 달려왔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사를 치르면서도 그의 가슴 한 켠에는 야구가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사이드 피치'가 박찬호를 지켜본 17년 동안 그에게서 한결같은 야구를 향한 열정과 에너지를 본다. 그 열정은 메이저리그에서 '직업의식'으로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자신의 직업인 야구에 대한 분명한 열정, 무한한 욕심이 있다. 그리고 그 열정이 신념과 어우러져 지금의 위치에 그를 올려놓았을 것이다. 병상에서도 마운드를 그리는 박찬호의 열정, 그 열정이 '코리안 특급'의 성공 스토리를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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