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위협 1년 만에 '마지막 금지선' 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16일 핵억제력을 물리적으로 공개하는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한 것은 핵실험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일 8천여개 사용후 핵연료봉의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밝히고, 이를 통해 얻어진 플루토늄을 핵무기 생산에 투입했음을 시사한 데 이어 핵 위기 지수를 열흘여 만에 다시 한 단계 올린 것이다.

북한은 지난 4월 중국 베이징(北京) 3자(북.미.중)회담에서 핵 보유를 언급하면서 이의 물리적 입증(physical demonstration)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공식적인 외교부 대변인 언급을 통해 핵실험 강행을 시사하기는 처음이다.

지난해 10월 17일 한.미 양국이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 계획 시인을 공표하면서 제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진 이래 만 1년 만에 북한이 마지막 금지선(red line)까지 바짝 다가선 것이다.

북한의 이번 언급은 일단 2차 6자(남북, 미.일.중.러)회담 개최 교섭을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벼랑끝 전술의 일환으로 보인다. "때가 되면""미국이 선(先) 핵포기를 고집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았기 때문이다.

북핵 해법이 심도있게 논의될 오는 20일의 방콕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번 입장을 밝힌 데서 한.미 압박용의 색채도 묻어난다. 고강도 조치의 예고에는 대화 노선의 한국 정부와 강온 양면전략을 펴는 미국을 이간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북한의 이날 입장 표명은 핵 시위의 마지막 카드인 핵실험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핵실험은 핵보유 여부를 판가름하는 잣대다.

당장 차기 6자회담 교섭 과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북한이 6자회담의 무용론을 주장하고 있는데다 6자회담 1차회담에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언행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사항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최근 미국의 대북 협상기류가 바뀔 수도 있다. 북한의 이번 입장으로 공사 속도를 줄여온 대북 경수로 사업은 극적인 타결이 없는 한 중지가 불가피해졌다.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제12차 장관급 회담이 평양에서 열리는 와중에 북한이 초강수를 던지고 나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측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에 추가적인 상황악화 언행을 중지해 달라고 촉구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언급은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영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