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세금 … 시민들이 고발한 '황당 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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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이 체납액 10원을 독촉하기 위해 등기우편을 보냈다."

"서울시청 앞 광장 분수대는 비 오는 날에도 물줄기를 뿜어댄다."

"대통령 동정 사진을 880개 관공서에 월 12장씩 보낸다."

국민의 세금이 줄줄이 새나가고 있는 현장이 시민들의 신고로 무더기로 드러났다. 28일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정부 각 부처에 접수된 세금낭비 신고 사례는 모두 819건으로 이 중 64건(15%)이 타당한 지적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르면 일부 공무원은 탈법.불법으로 예산을 전횡한 것은 물론, 무계획적으로 예산을 지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 시민은 "공직사회가 예산을 방만하고 비효율적으로 운용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국민 세금을 눈먼 돈 취급할 줄은 몰랐다"고 분개했다.

◆불법.비효율 예산 집행=공무원이 국민의 세금을 쌈짓돈 주무르듯 하는 사례는 정부부처와 지방정부 구분 없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햇볕정책에 따라 남북협력기금의 지원을 받는 개성공단관리기관은 관계부처와의 협의 없이 직원 인건비를 초과 지급했다. 통계청의 지방사무소는 업무보조원 2명을 채용한다고 속여 타낸 예산을 업무비로 쓴 사실이 확인됐다.

10원을 받기 위해 1500원에 달하는 등기우편을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한 납세자는 세무당국에서 24만1490원을 납부하라는 고지를 받은 뒤 계산 착오라며 10원을 추가로 내라는 독촉장을 등기우편으로 받은 것. 예산처 관계자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라고 국세청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한 시민은 서울시의 굴절버스가 대당 5억원으로 1억원 수준인 일반 시내버스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고 활용도 역시 낮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의회는 굴절버스가 대량 수송 등의 장점을 갖고 있지만 비싼 데다 부품 조달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해 추가 수입을 보류했다.

또 국정홍보처는 880개 중앙정부기관, 시.군.구 지자체, 공기업 등에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의 동정 사진을 여섯 장씩 월 두 차례 우편물로 보내는 것도 세금 낭비로 신고됐다. 국정홍보처는 이런 지적에 따라 앞으로는 수요조사를 통해 제한적으로 보내기로 했다.

◆국민 감시가 예산낭비 막아=혈세가 낭비되는 현장에 대한 국민의 감시 눈길도 많아지고 있다. 한 시민은 서울시청 앞 광장의 분수대를 비 오는 날에도 가동하는 것을 세금 낭비로 지적했다.

창덕궁관리소가 2005년 5억원의 예산을 들여 영군번소를 복원해 사무실로 사용하다 1년도 안 된 올 1월 3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내병조 건물을 개조한 뒤 사무실을 다시 옮긴 것도 예산 낭비의 전형으로 신고됐다.

읍 단위의 지방자치단체 한 곳에선 게이트볼장을 설치했으나 10개월간 이용자가 1명도 없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한 시청에선 공무원들에게 출퇴근용으로 자전거를 구입해준 데다 그나마 제대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신고도 접수됐다.

예산처 관계자는 "지자체의 경우 예산낭비의 문제점을 통보해줄 뿐"이라며 "마땅한 제재조치가 없어 근본적인 대책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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