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걸 교수의 공공 디자인 산책 ⑨ "나를 만지세요" … 체험 미술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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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 앞 분수.

청계천 입구에 설치된 도롱뇽 조각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면 '다가가지 마시오' 혹은 '만지지 마시오'라는 경고문과 함께 접근을 막는 제한선을 흔히 봅니다. 이는 일차적으로 작품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예술품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 감상하는 방식에 맞춰 제작돼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요즘은 관람객이 작품을 직접 만져 보거나, 더 나아가 작품의 일부가 돼 체험하도록 돕는 공공미술 전시가 늘고 있습니다. 이는 감상자가 예술품과 분리돼 관조하던 방식에서 감상자의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미술로의 변화를 시사하는 것입니다.

도시의 삶과 일상의 풍경을 풍요롭게 하는 공공미술은 시민의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위해 개방된 장소에 설치하는 조각과 벽화.기념비와 같은 조형물에서부터 일시적으로 진행되는 영상물까지를 모두 포함합니다.

왼쪽 사진은 서울 도심에 있는 한 공공 조형물입니다. 분수대와 어우러진 균형 있고 섬세한 조각은 주변의 근대 건축물들과 함께 독특한 장소성을 형성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조형물은 시민이 다가갈 수 없는 '바라보는 예술품' 입니다.

얼마 전 청계천에는 형형색색의 일곱 마리 도롱뇽 조각이 등장했습니다. 조각가 신현중씨의 이 작품은 재미있는 형태에 인간적인 스케일로 만들어져 예술품에 대해 시민이 느낄 수도 있는 심리적 거리감을 없애고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무더위를 피해 청계천을 찾은 시민이 스스럼없이 이 도롱뇽들에 기대 휴식을 취하거나 올라타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다가오시오' '나를 만지세요'는 공공미술의 보편적인 개념으로 정착돼 가고 있습니다.

권영걸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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