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고향의 과소비 풍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삭막한 도시생활도 올해로 10년째가 된다.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채 꿈에 그리던 서울로 시집온 이후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으니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이따금 야트막한 뒷동산에서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고향의 산천을 그리며 옛날을 회상 하는 것이 생활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나의 그 행복한 추억은 이번 신정연휴중 오랜만에 고향을 다녀온 후로 포말처럼 부서져버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널찍하게 뚫렸던 고향길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자가용의 행렬로 해 2∼3배의 시간이 소요돼 모처럼 들뜬 나들이를 짜증으로 얼룩지게 했다.
어릴적 꿈을 돌아보던 고향집의 앞산정경은 간 곳 없고 진달래의 모습은커녕 서울서도 지겹도록 보아온 콘크리트의 아파트빌딩 숲으로 변해 버려 나의 실망은 무딘 필치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대단했다.
게다가 나이 드신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의 얼굴에선 옛날의 그 소박한 미소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대신 딸이나 아들이 사다줬다는 모피코트등을 서로 자랑하기에 여염이 없는 것이 아닌가.
눈뜨면 값이 오른다는 곳곳의 옥수수밭·들깨밭들은 서울의 모 재벌희사가 호텔을 짓는다, 수영장을 만든다, 오락장을 짓는다는 등 무성한 소문 속에 누군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듯 어느새 불모지인양 파헤쳐져 있었다.
서울서만 느끼던 과소비 풍조가 시골구석 구석에까지 만연돼가고 그야말로 세상이 온통 한탕주의와 향락위주로 물들어 감을 느낄 때 갑자기 고향을 잃은 듯한 허전함이 온몸을 엄습해왔다.
내 마음 깊숙히 자리잡았던 「먼 옛날의 금잔디동산」은 이제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 세월은 이렇게 쏜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만 가는데 나의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은 어디 가서 찾으란 말인가.
우리아이들 세대에는 한탕주의의 투기꾼이 없고 과소비 풍조가 없이 근면 절약하며 따뜻한 온정을 서로 베푸는 그런 날이 되길 간절한 소망으로 기도해본다. <서울도봉구 쌍문1 동503의29>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