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리빙] 디자인전에서 엿본 부엌의 미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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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이 바람났다. 부엌은 과학과 만나고 예술과도 사귄다. 부엌이 진화한다. 요리하고 설거지만 하는 구식 부엌은 사라졌다. 채소를 기르는가 하면 마술을 부린다. 이런 부엌이라면 어느 소설가 말마따나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될 만하다. 요즘 부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9월 7일부터 10월 1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생활디자인전 '부엌× 키친'에 가면 궁금증이 풀릴 듯하다. 큼직한 무쇠 솥이 걸려 있는 재래식 부엌부터 똑똑한 가전제품들로 치장한 '웰빙 키친'(1)까지 한국 부엌 변천사가 펼쳐진다. 부엌은 이제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상처를 치료하며, 쉬고 힘을 얻는, 집의 심장 같은 곳이 되고 있다.

보는 이의 눈길을 끄는 새로운 부엌 형태는 인간과 자연과 기술이 부드럽게 만나는 개념에 초점을 맞췄다. '재배 부엌'(2)은 친환경 밥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미래형 부엌이다. 주방에 설치된 밭에서 설거지할 때 나오는 폐수와 음식 찌꺼기를 거름 삼아 키운 신선한 채소를 바로 따서 먹을 수 있다. 아이가 채소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은 덤이다.

'식탁 부엌'은 밥 먹는 테이블에 아예 간단한 주방이 붙어 있어 간단한 요리와 설거지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작은 면적에 설치할 수 있어 집 안이 널찍해지고 가족이나 손님과 얘기하며 부엌일을 하는 기쁨이 크다. '콤팩트 키친-양동이를 내려라'(3)도 소형 아파트에 긴요한 부엌이다. 주방과 식탁을 겸할 뿐 아니라 수납공간을 천장 조명 기구를 겸하는 양동이에 겹쳐 놓아 아예 부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예술로 변신한 부엌도 있다. '미니멈 키친'(4)은 현대 조각처럼 보이지만 이리저리 펼치면 바로 부엌이 된다. 그래서 별명이 '어디서나 부엌'이다. 가방처럼 가지고 다니다가 필요한 곳에서 열면 바로 주방 일을 볼 수 있다. 보자기 개념을 빌려온 움직이는 부엌이다.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가 만든 21세기 부엌을 둘러보면 이곳이야말로 현대인의 놀이터요, 문화 공간이자 쉼터라는 생각이 든다. 거실과 부엌 공간이 겹쳐지고 있는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기문주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큐레이터는 "우리에게 부엌은 어떤 공간인가 한번쯤 돌아보며 미래의 부엌, 내가 그리는 부엌, 내 맘에 꼭 맞는 부엌은 어떤 형태인지 상상하고 만들어 가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2-580-1498.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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