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백호가 마주보면 형제 간에 송사가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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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형제 간 유산 다툼으로 노부모를 냉골에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거나 모 재벌가 형제들이 역시 상속문제로 재판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들이 심심찮게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분쟁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결국 '재산'으로 압축된다. 화목하던 형제나 자매 사이에 뜻하지 않게 재산을 놓고 싸움이 일어난다는 것은 아마 인간의 본성이 선하기보다는 악하다는 이른바 성악설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풍수에서는 이런 심성적 원인보다는 지기(地氣)의 문제로 파악하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기에서도 후손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선조의 유택, 곧 묘 자리에서 발생하는 기운의 탓으로 판정한다.

선조의 묘 상석에서 보아 왼쪽에 있는 산들이 청룡이다. 또 오른쪽에 있는 산이 백호다. 이 청룡과 백호는 대개 명당 앞에서 한쪽이 길거나 짧아 서로 감싸는 형세를 이룬다. 지기가 좋은 곳은 이렇게 서로 감싸고 있는 사이로 명당에 모였던 물이 서서히 흘러나가며 명당에 조화로운 기운을 조성한다.

그러나 때로는 청룡과 백호가 서로 감싸 안지 못하고 마치 칼끝을 마주하듯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묘에서는 어김없이 형제 간에 불화가 일고 끝내는 분쟁으로, 나아가 세상의 이목을 끄는 송사에까지 이르게 된다. 필자가 답사한 유명인들의 묘소에서 이런 현상을 발견한 후, 집안의 내력을 더듬어보면 어김없이 형제 간에 분쟁이 일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명당 안에 흐르는 물이 많을수록 그 집안은 천석 혹은 만석의 부자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재산도 청룡과 백호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서로 싸우는 형세이면 머지않아 재산의 소진은 물론 후손들 간에 싸움마저 일어난다는 것을 지기가 웅변으로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혹 선조의 묘를 정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와 아울러 한마디 더 첨가한다면 산소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산들은 각각 형제 간의 자리와 위계질서도 상징한다는 점이다.

"형님, 돈 좀 주시오."

"또 돈 달라는 말이야. 너도 염치가 좀 있어야지."

"정 싫다면 묘를 옮깁시다. 형님만 덕 볼 것은 없잖아요."

선조의 묘를 두고 집안에 오가는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대개 이런 다툼이 일어나는 원인은 형제 간에 빈부의 차이가 날 경우다. 그 빈부의 차이가 바로 조상의 묘 때문이라는 것이 아우의 주장이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앞서 말한 것처럼 풍수에는 분방론(分房論)이란 것이 있다. 묘를 기준으로 청룡은 첫째인 맏이, 앞에 있는 안산은 둘째, 오른쪽 백호는 셋째 등으로 나누어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이다. 이보다 형제가 많을 경우에는 역시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배당한다. 넷째가 청룡, 다섯째가 안산, 여섯째가 백호 등이다. 또 딸과 아들의 구분은 크게 보아 청룡이 아들, 백호가 딸에 해당한다.

위의 대화는 바로 묘의 방향이 형님에 해당하는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아우에게는 복이 오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묘를 옮기면 아우에게 유리한 쪽으로 방향을 잡겠다는 협박(?)이 담겨 있다.

그런 이유로 산에 가서 풍수사는 말을 지극히 아껴야 한다. 잘못해서 "아, 이 자리는 큰아들에게만 좋겠구나" 혹은 "둘째가 몽땅 복을 차지했구먼" 한다면 결국은 집안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후손과 관계되는 산의 내력을 조금 더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묘 바로 뒤에 있는 산은 부모산이다. 묘에 가장 영향력을 많이 미치는 산이다. 이 산의 생김새를 보고 살아생전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한눈에 판단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산이 남성이라면 물은 여성이다. 묘 앞에 있는 물은 아내와 인연이 있고 부모산 옆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어머니와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친다.

풍수의 오묘한 이치가 여기에 이르면 산은 그저 저만치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지배하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최영주 언론인.풍수지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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