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연의 세계 일주] 튀니지 남자가 내 얼굴에 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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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병이 도질 때가 있다. 공주병. 그도 그럴 것이, 거리의 모든 남자들이 깊숙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한번 웃어주기라도 하면 기절할 것처럼 좋아하니 말이다. 그뿐이야? 가는 곳마다 '사랑한다' '결혼하자'고 따라다니는 남자투성이이니, 공주 안 되고 버틸 장사 있느냐고.

피부색이 검은 동네일수록, 옅은 피부색에 눈 찢어진 내 모습이 더욱 매력적으로 비치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나는 피부가 흰 편에, 살집이 붙은 몸매라 더욱 더 인기였다. 우리의 1960년대, 배 나오면 '사장님' 으로 불리던 시절을 기억하는가? 배고픈 나라일수록 통통한 체형을 선호하는 법. 그러므로 '가난'하고 '검은'사람들이 사는 동네에만 갔다 하면, 나는 그야말로 스타 중의 스타였다. 어디를 가나 시선 집중. (연예인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다니까?)

남자를 '발톱의 때' 취급하며 다니던 어느 날. 장대한 골격에 멋진 입술을 가진 튀니지 남자가 청혼해 왔다. 나는 예의 공주의 거드름을 피워대며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내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죠?"

두툼한 입술의 튀니지 청년,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당신, 너무 너무 아름다워요!"

여기서 만족했으면 좋았을 것을. 우쭐해진 나머지 생략했어야 할 질문을 날렸다.

"내 얼굴 어디가 그렇게 예쁜데요?"

"당신의 그 피자 같은 얼굴, 너무너무 매력적이거든요!"

갑자기 정신이 화들짝. 피자라니! 피자와 내 얼굴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피자처럼 동그랗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피자처럼 맛있게(?) 생겼다는 소리? 다그치며 묻는 내 태도에 놀란 청년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눈, 코, 입이 모두 큰 우리 나라 여자들에 비해, 당신은 눈, 코, 입이 다 오밀조밀 작잖아요. 옆에서 보면 피자같이 판판하게 높낮이도 별로 없고. 그 얼굴이 너무 귀엽고 예뻐요."

이날 이후 '피자'는 그 단어 자체가 주사가 되어 버렸다. 공주병에 즉효인 나만의 주사. 피자 같은 내 얼굴 ♬ 예쁘기도 하지요 ♬ 눈도 납작! 코도 납작! 입도 납작!

조정연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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