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개편­자기들만의 일인가/진덕규(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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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해를 맞이하면서 정치권의 부산한 움직임을 보게 된다. 4당 총재들이 번갈아 텔리비전에 나오기도 하고 한결같이 정계개편을 주제로 삼아 정국의 구도를 새롭게 모색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총재들의 요지는 현재의 정치상황은 4당구조로는 적실성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 부응하는 정당제도의 재편이 요구된다는 주장인 것 같다.
○누가 만든 4당인가
정계개편을 주장하는 논지를 듣고보면 참 묘한 생각이 들게 된다. 마치 지금의 정국을 자초한 사람이 우리들 서민들인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역감정을 유발한 사람도 우리들 서민이고,4당체제를 만들어 효율적 국정을 못하게 만든 것도 우리들 민초의 잘못이며,합리적인 민주화를 못 이룬 것도 우리들 민중들 때문인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어느 시기에는 민주화만 이루어지면 경제발전도,남북통일도 모두 해결된다고 주장하면서 그러한 민주화는 바로 대통령제 개헌을 이룩하는 데 있다고 떠들었던 사람들이 누구였던가를 기억하게 된다.
6월의 대변혁을 보여주었던 이른바 6ㆍ29선언이라는 것에 대해 그처럼 찬사를 보내면서 자기만이 대권을 잡을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국민들 앞에서 큰소리쳤던 그들이 누구였던가를 기억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4당구도였고 그렇게 엮어놓은 것이 오늘의 이 정국이다. 그러한 정국을 이제는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하기야 고칠 것이 있으면 당장에라도 고쳐야 한다.
이 세상의 제도치고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있을 수 없다. 만일 4당구조가 안맞다면 대담하게 고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가지 선결되어야 할 문제가 따르게 된다. 적어도 정계개편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들 앞에 무슨 이유로 정계개편되어야 하는 지 소상하게 설명되어야 할 것이고 그리고 난 후 국민들의 뜻이 어떠한지를 알아보는 절차쯤은 거쳐야 마땅할 것이다. 만일 그러한 일이 어렵다면 우선 각 정당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당원들의 총의를 묻는 합리적이고 적법적인 과정쯤은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정당이 현재의 정치구도를 어떻게 인식한다는 식의 연구백서도 발간하고,미래의 정치적 청사진을 보여주는 구상도 논의하는 그러한 내용이 담겨지게 된다면 더 할 수 없이 좋을 것 같다.
설마 그러한 일이야 없겠지만 무슨 대권을 장악하기 위한 대선의 한 정략으로 정계개편이 논의되거나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방법으로 내각책임제를 주장한다면 이것처럼 기막히는 국민 속임수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정치라는 것이 결코 한 두사람의 직업적 정치가의 권력 욕망을 이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며,구태여 정치학원론을 뒤지지 않아도 전체국민의 복지와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것임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이 그 따위 얕은 수단으로 정국을 개편하려는 것이 아닐 것임을 믿게 된다. 만의 하나 그러한 의도로 정국을 지금 개편한다 한들 그 정국은 또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이며 또 다른 개편의 한차례 돌개바람은 언제쯤 또 무슨 명분을 내세워 휘몰아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 정국이 정치의 안정을 이룩할 수 없는 여소야대이기 때문에 정계개편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도 무엇인지 잘 납득되지 않는 면이 없지 않다. 그것은 오늘의 정국에 불안이 있고 정치의 안정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여소야대의 4당체제 때문인지,아니면 정치 지도자의 파당성과 무책임 때문에 기인한 것인지,그리고 올바른 민주개혁과 정의로운 사회발전을 요구하는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지 못한 정치권 전체의 무능에 기인한 것인지를 판가름하여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열정에 발맞추어 멋있는 정치개혁과 사회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데도 정국이 혼돈되고 정치가 발전되지 못했다면 그러한 정치구도는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일 보혁구도와 달라
정계개편을 논의하면서 마치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무슨 보혁구도라는 말인 것 같다. 언뜻 들으면 상당히 의미있는 주장처럼 들리지만 이 말 역시 잘못된 적용논리인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는 그 이유에 대한 장황한 설명같은 것은 삼가겠지만,다만 이웃 일본을 사례로 드는 일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보혁구도라 할 수 있는 자민당의 형성에 대하여 한가지 사실만은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일본에서는 일찍이 사회주의 정당이 존재했고 상당기간 사회주의 이념이 국민속에 스며들어 한때는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집권까지 한적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일본의 대기업가와 보수지향의 일부 국민의 열망은 분파로 나누어져 있었던 보수정당을 합쳐줄 것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것에 대한 부응이 자민당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오늘의 자민당은 단순한 보수단일정당이라기 보다는 보수세력의 연합체로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일본과 같은 보혁구도를 설정하려면 먼저 우리 사회의 사회주의세력의 제도적 위치가 올바르게 가름돼야 할 것이고 개편에 대한 국민적 의지와 욕구가 전제돼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한데도 보혁구도를 주장한다면 이는 기존 보수지배세력의 권력욕구와 직업적 정치의 자기 보신에 기인된 논리에 불과하다는 비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국민 뜻 물어야
정계개편이 이룩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국민들 앞에 그 이유가 소상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며 그것을 국민앞에 논의하는 해당 정당들의 민주주의적 결정과정도 거쳐야 할 것이고,더욱이 정치발전을 위한 새로운 노력의 일환으로 지금의 정치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애국적 헌신이라면 최소한 정계개편 당시의 각 정당 지도자들은 개편된 이후의 정계에서는 아주 은퇴하겠다는 살신성인의 자기희생쯤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비록 개편됐다고 해도 선거때가 되면 또 갈라서는 추태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오늘의 우리 정계는 개편돼야 한다. 그러한 개편은 반드시 국민적 의사의 발판위에 이루어져야지,개편돼야 할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개편같은 것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오고 말 것이다.<이화여대교수ㆍ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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