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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안맞는 문화정책/시정돼야 할 원칙 따로 사업 따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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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설된 문화부에 거는 기대와 의욕에 찬 초대 장관의 취임초 문화관계 발언으로 자못 세인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문화행정의 윤곽이 밝혀졌다.
각양각색ㆍ백인백태의 욕구와 기대로 이뤄질 문화에 대한 이해와 시각을 어떤 모양으로 수용하고,어떤 방향으로 추진해 나갈 것인지가 정부의 문화행정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었고 궁금증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부가 밝힌 향후 문화행정의 골격이라 할 「문화주의 새 사업 벌이기」의 29개 추진사업은 앞으로도 많은 논의와 비판 또는 수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첫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비판의 소지는 방향의 원칙과 추진정책이 부조화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원칙은 거창하지만 시행세칙은 별게 아니라는 비판이 일 것이다.
예컨대 정책방향의 일의적 원칙으로 내세운 「세대간ㆍ계층간ㆍ지역간ㆍ성별간의 이질화 및 갈등현상을 문화적 힘으로 치유」 한다는 추진방향과 그 시행세칙인 「한국의 고유의 멋과 맛」 지키기 운동이나 「한민족 문화대축제 순회」 개최가 어떤 관련성을 지닐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우리 사회의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이질화ㆍ갈등현상을 한복 바로입기 운동과 한국상징 신화사전 편찬으로 치유될 수 있을지,그 상상의 비약에 납득이 가질 않는다.
둘째,문화가 정부 또는 관료행정에 의해 운영되고 관리될 때 가장 위험스런 현상으로 등장하는 것이 관제문화이고 전시문화였다.
신임 장관 스스로도 문화의 자율성과 다원성ㆍ창의성을 거듭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29개 사업의 주요 부문은 북치고 장구치는 예술단의 해외파견,한민족 문화대축제,순회공연,「이벤트문화 기획단」 구성… 등으로 짜여있다.
문화가 올림픽의 전야제나 폐막식에서 보였던 이벤트사업에 포함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지엽말단의 일부일 뿐이다. 문화행사가 지나치게 현시ㆍ전시 일변도로 질주해버릴 때 그것은 전시문화ㆍ관제문화에로의 길을 걷게 될 수밖에 없다.
셋째,신임 장관이 취임초에 밝힌 바 있는 「벌판에 집을 지으러 나온 목수」의 각오가 적어도 이번의 문화사업 추진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있지 않다는 점이다. 광야에 집을 세우겠다는 레토릭은 적어도 문화의 기반시설을 세우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지대한 관심을 가졌었다.
그런데 『문화의 하드웨어(건물) 보다는 소프트웨어(사업)에 치중 하겠다』는 이번의 레토릭은 불과 열흘동안에 일어난 수정이고 변화다.
문화의 기반시설이란 시민 모두가 공유하고 참여할 수 있는 도서관ㆍ미술관ㆍ극장 등의 물리적 공간과 갈등과 이질화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의 공감대가 그것일 것이다. 그러한 기초적 공간마련 보다는 전시적 프로그램에만 열중한다면 또다시 전시문화ㆍ관제문화의 비난을 받을 소지가 생겨날 것이다.
짧은 기간에 서둘러 발표된 문화사업이라는 점에서 사업세칙은 앞으로도 각 분야 전문가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수정되고 보완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비판과 논란의 여지가 분명한데도 여론과 중의를 무시한다면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정부가 관장해온 우격다짐의 관제문화의 관습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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