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건널목-신은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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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그 건널목에는 붉은 신호등이 켜져 있었다. 점심 무렵에 우체국을 가느라 건널목 앞에 다다른 나는 서있는 몇몇 사람들 속에서 아주 작고 가냘프게 보이는 여자어린이를 보았다. 무슨무슨 그림유치원이라고 써붙인 노란가방을 등에 걸머진 채 한 손에는 신주머니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역시 노란색으로 된 우산을 들고 있었다.
때아니게 쏟아진 겨울비로 인해 4차선의 넓은 도로는 젖어 있었다.
파란불이 켜졌지만 건널목의 중간지점에 이르면 이내 신호등이 깜박거리고 성질급한 자동차들은 행인들이 다 건너든 말든 급하게 움직이는 통에 서둘러야만 했다.
파란불이 꺼짐과 동시에 겨우 인도에 올라선 나는 같이 길을 건넜던 아주머니 한분이 『저런 저런』하며 탄식하는 소리를 들었다. 왜 그러나 싶어 그 아주머니의 눈길을 좇아간 순간 조금전의 그 유치원 꼬마가 쌩쌩내달리는 차도 한복판에 오똑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 어린이는 금방이라도 치고 달아날듯 맹렬하게 오가는 자동차들의 질주를 요리조리 살피며 위험하게 서있어 멀리서 보는 사람의 가슴까지 불안하게 했다.
한참후 불이 바뀌고 그 아이의 노란 우산이 다가왔을 때 나는 아이가 혼자 중간에 떨어져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어, 그리고 저만 살자고 먼저 건너 온 어른들에 대해 그아이가 어떤 원망을 품을까 하는 부끄러움에 아이에게 다가가 고작 『유치원차가 집까지 바래다주지 않니?』라고 물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눈망울이 또렷또렷하게 생긴 그 여자아이는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대꾸했다.
『나는 매일 여기를 혼자 건너다니는 걸요. 중간에 오면 빨간불이 켜지는데 어떻게 건너와요.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요, 빨간불이 켜지면 절대 건너지 말라고 했어요.』 아이는 자랑스럽게 또박또박 말하고는 제 갈길을 재촉했지만 나는 뭔가에 한대 얻어맞은 듯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서울동대문구장안1동1940의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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