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자주' vs 서울시장 '자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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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자주'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24일 국립중앙박물관 광장에서 열린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에 권양숙 여사와 함께 참석했다. 통상적인 행사로도 볼 수 있지만 내막은 그렇지 않다. 노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이 행사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용산기지 반환에 담겨 있는 역사적 의미 때문"이라며 그 의미를 "자주"로 표현했다. 취임 이듬해인 2004년 3.1절 기념사에서 노 대통령은 "간섭과 침략과 의존의 상징이던 용산기지가 몇 년 뒤면 우리 국민의 손에 돌아온다"며 "점차 자주권이 강화되고 어엿한 독립국가로서의 대한민국 국민들 품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었다.

노 대통령은 24일에도 용산기지의 역사성을 언급했다. 그는 "이곳 용산은 아픈 역사를 가진 땅"이라며 "124년 전 임오군란을 빌미로 청나라 군대가 주둔해 우리 국정을 좌지우지 간섭했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본군이 강점하면서 제국주의 침략과 지배의 전진기지가 되었던 땅"이라고 말했다. "해방 후에는 미군이 주둔해 우리의 국방을 기대어 온 땅"이라고도 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이제 이 땅의 의미가 달라진다"며 "침략과 지배, 전쟁과 고난의 역사를 과거로 보내고, 자주와 평화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공원이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했다. 주한미군에게서 돌려받는 용산기지에 공원을 만들겠다고 선포하는 행사에 자주의 의미를 담은 셈이다.

특히 공원 선포식을 한 8월 24일이라는 날짜도 그냥 정한 게 아니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1882년 임오군란을 빌미로 청나라 장군 오장경(吳長慶)이 4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지금의 용산에 주둔한 날이 바로 8월 24일이다. 노 대통령이 말했듯이 용산의 아픈 역사가 시작된 124년 전 그날을 공원 선포일로 잡은 것이다. 용산공원건립추진단 관계자는 "청와대와 협의해 학계의 자문을 거친 뒤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 날짜를 잡았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용산기지 공원화를 서울시가 아닌,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하려는 노 대통령의 생각은 확고하다. 노 대통령은 축사에서도 "서울시민 중에는 이 사업을 서울시가 시민의 뜻에 맞게 추진하기를 원하는 분도 많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 사업은 그 뜻에 있어 국가적 의미가 매우 크고 결과도 국가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처럼 자주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의지와 집착은 자칫 국내 정치에 활용될 소지가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동시에 폐쇄적 민족주의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미.대일 외교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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