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0기KT배왕위전 : 이창호의 조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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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40기KT배왕위전'

<도전 5번기 제3국>
○ . 왕위 이창호 9단 ● . 도전자 이영구 5단

제7보(82~96)=이창호 9단은 적수를 숨 막히게 한다. 서서히 조여오는 무형의 힘,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패배의 블랙홀… 그 앞에 앉아보지 않은 사람은 '숨 막힌다'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82로 다가오면 83으로 귀를 지켜야 한다. 84엔 85의 두 칸 벌림. 이창호는 서두르지 않는다. 불리한 이영구 5단도 마치 그 느릿함에 감염된 듯 서두르지 않는다. 사실은 흑에겐 강수를 두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백은 빈틈을 거의 완벽히 봉쇄한 채 로마 철갑 보병처럼 느린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도 이 수(87)는 너무한데요. 꼭 이긴 사람처럼 두고 있잖아요."(김성룡 9단)

"이영구도 싸움바둑이라더니 잘 참네. 하기사 참는 기술이 없이는 여기까지 올 수가 없겠지."(서봉수 9단)

네 귀의 흑집은 50집 언저리에서 꽁꽁 굳어가고 있다. 중앙까지 합해도 60집은 잘 안 된다. 백은 하변과 좌변이 35집. 우중앙은 아직 미지수인데 여기서 20집 이상이 나면 백이 이긴다. 백 90도 뼈아픈 한 수다. '참고도1'처럼 반발하는 것은 백2의 응수 타진에 이어 6으로 젖혀 수가 난다. A가 남아서 B의 이단젖힘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이다.

92, 94로 흑집은 물결치는 강둑처럼 조금씩 깎이고 있다.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불리한 흑에겐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 아프다. 96이 기로였다. 검토진은 '참고도2'처럼 중앙을 틀어막으면 백의 필승이라고 했지만 이창호 9단은 더욱 안전한 96을 선택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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