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태백 구와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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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EOS-1Ds MarkⅡ 16-35mm f16 1/8초 ISO 100

아주 어린 기억 속의 해바라기는 고향집 담벼락에 삐죽 고개를 내밀고 덩그러니 하늘을 우러러 서 있습니다. 하염없이 한 곳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 것만 같은 모습이 이 땅 어머니의 웃음과도 닮았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 담긴 해바라기는 화병 속에서 샛노란 빛을 뿜습니다. 그 빛이 이글거리는 태양보다 뜨거워 현기증이 납니다.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 '해바라기'의 그 꽃은 끝없이 펼쳐진 대지에서 바람에 하늘거립니다. '연인을 찾아 사랑을 갈구하는 네 이름은 흔들리는 해바라기'라는 포스터 문구처럼 애절한 그리움이 대지를 가득 메웁니다.

아홉 마리 소가 누운 형상이라는 태백 구와우(九臥牛)의 고원자생식물원(033-553-9707)엔 해바라기가 산을 이루었습니다. 하늘 맞닿은 능선부터 산허리를 휘감으며 꽃물결을 이뤘습니다.

더구나 수만 평에 펼쳐진 해바라기는 한결같이 한 방향을 보고 있습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쯤의 '바라기'를 품고 살아가지만 이들처럼 한결같진 않습니다. 하나의 '바라기'를 향해 선 구와우의 해바라기는 차라리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고향집 담벼락에 피어 어머니의 웃음과 닮은, 고흐의 작품에 담긴 샛노란 빛의, 광활한 대지에 그리움으로 핀 영화 속의 해바라기처럼 쉽사리 잊히지 않을 그 꽃들이 구와우 언덕에 지천으로 피어 태양을 우러렀습니다.

해바라기는 꽃봉오리가 맺힐 때까지 동에서 서로 해를 따라 이동합니다만 꽃이 피면 한쪽만 향합니다. 그리고 씨가 익어갈수록 고개를 숙이므로 꽃이 막 피어난 때를 택해야 빛이 깔끔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꽃 그림자가 지저분한 한낮보다는 이르거나 늦은 시간, 안개 낀 날을 택하는 게 좋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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