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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생은 미운 오리새낀가/직업교육ㆍ임금격차 완화 시급하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입재수생은 「미운 오리새끼」인가. 해마다 누적되고 있는 재수생에 대한 문교부의 대책 가운데 재수감점제가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 우리가 느낀 것은 그 사려없는 즉흥성과 천박한 대증적 발상에 대한 혐오감이다.
낙방생이 겪어야 하는 쓰라린 좌절감이나 낭패감과 재수생이 애써 매달리려고 하는 새출발에의 의지를 위무하고 북돋워주지는 못할망정 무슨 처벌의 대상인 양 벌점으로 단죄하려는 생각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물론 금년도 대학입시에서 세칭 일류대학의 합격자중 재수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50% 안팎에 이르고,91학년도에는 재수생 응시자가 30만명을 넘어 사상 최고를 기록한다는 사태가 정상적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초래하는 학교수업 불신풍조와 과외열풍이라는 부작용의 심각성을 외면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재수는 필수」라고까지 통칭되는 일반화된 대입풍조와 이로 말미암은 여러가지 부작용과 병리현상이 학부모나 재수생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기보다는 교육제도 내지는 사회구조의 불합리에서 연유된다는 점에 유의하자는 것이다.
우선 대입정원만 해도 올해의 경우 전국적으로 겨우 20만명에 불과한 데 비해 진학희망자는 89만명을 넘고 있다. 전문대학까지 합해도 30만명 이상이 재수가 불가피한 것이다. 대학의 수용능력 미비로 탈락된 자연발생적인 재수생들에 대해 누가 무슨 명분으로 감점의 불리를 뒤집어씌울 수 있단 말인가.
명문대 인기학과를 노리는 고득점 재수생의 경우야 논외로 치더라도 무슨 일이 있든지 대학간판 하나는 따놔야 사람대접 제대로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일반적 사고와 사회풍조가 대입열병의 주범임은 상식이다.
이런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시발점으로서 정부의 대책에 포함돼 있는 중ㆍ고교의 직업진로교육 강화와 학력간 임금격차 완화 등이 구호나 구상에만 그치지 말고 내실있게 실천돼야만 한다. 그것만이 과열과외와 대입열병으로부터 이 사회를 해방시키고 낙방생들을 실의와 좌절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근본적인 치유책이다.
대학은 취업준비기관이나 입사시험자격 취득기관이 아니라 학문을 연구하는 본래의 순수한 기능과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을 안가도 불편없이 생활을 할 수 있고 차별없는 대우를 받는 사회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이런 사회구조의 기본 방침이 되는 것이 학력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작업이다.재력이 능력의 척도가 돼가는 금권만능풍조,물신숭배사상이 팽배해 가는 현대사회에서 임금격차는 곧 인격적인 모멸이나 인간적 패배의 표상으로 간주되는 경향마저 없지 않다.
임금격차의 해소와 병행해 추진할 일이 중등교육 과정에서의 직업교육이며 전문대학의 활용이다. 이런 체제가 갖추어지면 현재 전국에 산재해 있는 2만8천여개의 각종 사설학원도 전문직업교육의 장으로서 유용하게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의 교육정책은 국가발전에 필요한 인력의 수급계획에 의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결정돼야 한다. 우리 사회의 재수생은 국가의 비전없는 교육정책이 양산한 피해자라는 시각에서 그 대책도 출발해야 한다. 대학졸업장이 없어도 실력만 갖추면 당당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체제가 먼저 정립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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