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환수 대통령 말려달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23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전직 국방부 장관 및 성우회 회원들을 만났다. 김성은 전 국방부 장관(右)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반대한다고 말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김근태(59) 열린우리당 의장과 전직 국방부 장관들이 23일 만났다가 파열음만 남긴 채 싸늘하게 헤어졌다. 성우회(예비역 장성 모임) 회원으로 의장실을 찾은 전직 국방부 장관들은 "대통령이 만나 주지 않아 김 의장을 찾아왔다"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에 거센 불만을 토해냈다.

그러나 김 의장은 면담 도중 군 원로들에게 "대화의 예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날카롭게 대응했다. 웃음과 악수로 시작된 면담은 한 시간 남짓 뒤엔 차가운 대화로 마무리됐다.

▶김성은(82) 전 장관="지금은 마치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이 넘어가던 비상 시기와 유사하다. 대통령이 국군의 날에 전작권 환수 방침을 밝히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큰일 난다. 김 의장이 대통령을 말려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상훈(73) 전 장관="한미연합사엔 860여 명이 근무하는데 이 중 500여 명이 한국 사람이다. 30여 년간 연합사에서 근무했던 장병들은 미군의 하수인이라는 말인가. 전시가 되면 자존심이 어디 있나. 전쟁에선 이기는 게 최고다. 전작권 따지는 것은 백해무익이다."

▶오자복(76) 전 장관="연합사가 있기 때문에 미군은 전쟁이 나면 자동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국방부 안을 보면 자동 개입이 아니라 미국이 (전쟁 발발 시) 심사숙고한 뒤 개입을 결정하도록 선택 개입을 유도하는 꼴이다. 멀쩡한 시스템을 왜 바꾸나. 연합사 해체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이기백(75) 전 장관="정권은 국민이 위임한 일정 기간만 존속하지만 역사는 영구히 지속된다. 정권을 담당하는 동안 현명한 정책을 펴 달라."

▶박세직(73) 재향군인회장="전작권은 자존심 문제라고 하는데 여론몰이 정치로 이득을 보려는 인기영합주의, 포퓰리즘이다. 정부는 전작권 환수가 한.미 동맹과 무관하다 했지만 내가 미국에서 만난 젊은 국방부 실무자들은 '한국은 이미 포기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 후 한국 정부의 입장 표명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말을 하더라."

김 의장은 굳은 표정이었다. 이종구 전 장관이 답변을 요구하자 "여기는 청문회장이 아니다"며 질문을 끊었다. 박세직 회장이 발언할 땐 "시간이 너무 지나갔다"고 지적했다. 전직 장관들의 공세가 계속되자 김 의장은 급기야 "망설이다 (여러분을) 만난 것은 성의였는데 대화에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것 같다. 유감스럽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전작권 환수는 노태우 정권의 대선 공약인데 지금은 안 된다면 정치적인 입장 때문으로 비친다"며 "설득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태우 정부 당시 각각 국방부 장관, 안기부장이던 이종구 전 장관과 박세직 회장을 겨냥한 것이다.

채병건 기자 <mfemc@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